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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전 고려, 세련되고 정겨운 생활 청자의 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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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호 05면

1 사자 장식 청자향로 2 두꺼비 모양 청자벼루 3 참외 모양 청자주전1 3 자

비색의 아름다움에 취할 겨를이 없다. 그 규모에 먼저 놀란다. 고려청자가 생활용품이었던 1000년 전 우리 삶의 격에 감탄할 뿐이다.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특별전 ‘고려청자보물선’은 충남 태안 대섬 해저 난파선에 실렸던 고려청자 740여 점이 전시된 자리다. 이른바 ‘주꾸미가 건져 올린 보물’들이다.

특별전 ‘고려청자보물선’, 9월 6일까지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무료, 문의 061-270-2044

발견 당시부터 화제였다. 2007년 5월 낚싯줄에 낚여 올라온 주꾸미 한 마리가 고려청자를 감고 있었던 게 단서가 됐다. 곧이어 약 900년 전 침몰한 고려시대 청자 운반선을 발굴했다. 그 속에는 청자 2만3000여 점이 실려 있었다. 특히 귀한 유물은 ‘목간(木簡)’ 34점. 최초로 발견된 고려시대 목간이다. 목간은 작은 나뭇조각에 먹으로 청자 운반선의 항로에 대한 기록을 적은 일종의 화물표다.

청자를 보내는 곳, 받는 곳, 청자 수량 등이 적혀 있다. 그 목간을 통해 배가 탐진(耽津ㆍ지금의 전남 강진)에서 개경(京ㆍ고려의 수도)으로 도자기(沙器)를 운반하는 중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고려시대 강진은 국가에서 자기소(磁器所)를 설치해 관리했던 청자 생산지였다. 지금까지 강진군 대구면에서 확인된 가마터만도 용운리ㆍ사당리ㆍ삼흥리ㆍ계율리 등 188곳에 달할 정도로 그 규모가 크다.

배에 실린 청자는 대부분 대접ㆍ접시ㆍ사발 등 생활용 그릇이다. 사찰에서 승려가 쓰는 발우(鉢盂ㆍ굽이 없는 그릇)도 총 167점 출토됐다. 발우가 2점, 3점, 4점씩 포개진 세트 상태로 가지런히 실려 있었던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특별전은 태안 청자 운반선에 실렸던 유물들을 종류별로 골고루 보여 준다. 국보나 보물급 최상품은 아니다. 하지만 1000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선조의 삶과 정신을 들여다보기에 더없이 좋은 매개체가 된다. 특히 그릇 하나하나에 담긴 무늬가 인상적이다. 꽃무늬와 파도 무늬, 앵무새와 구름무늬 등 다양한 무늬가 청자 위에 새겨졌다. 간결하면서도 화려한 세련미가 돋보이는 장식이다. 특히 꽃무늬가 많았다.

연꽃과 모란꽃ㆍ국화꽃 무늬가 단골 소재다. 강진군과 함께 이번 특별전을 주최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박예리 학예연구사는 “만물의 탄생과 회생ㆍ다산을 의미하는 연꽃은 도자기에 가장 많이 그려지는 소재”라며 “모란꽃은 꽃잎이 풍성해 화목과 아름다움을 의미하고, 국화꽃은 군자의 기상과 인내ㆍ장수를 나타내는 꽃으로 여겨져 장식 문양으로 많이 쓰였다”고 설명했다.

전시품 중에는 사자 장식 향로와 두꺼비 모양 벼루, 참외 모양 주전자 등 독특한 형식의 청자들도 있다. 두꺼비 모양 청자벼루는 철화와 퇴화문 기법으로 무늬를 넣었다는 점이 이채롭다. 사자장식 청자향로는 사자를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혀를 쏙 내민 사자 얼굴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번 특별전은 고려청자보물선 뱃길 재현 사업을 기념해 열렸다. 강진군은 총사업비 3억5000만원을 투입해 태안 청자 운반선을 복원한 ‘청자보물선 온누비호’를 제작하고, 8월 3일부터 8일까지 강진 마량항에서 강화도 북방한계선까지 뱃길을 재현했다.

또 8일부터는 강진군 대구면 청자촌 일원에서 강진청자축제(www.gangjinfes.or.kr)도 시작됐다. 물레 체험, 고려왕실 행차 퍼레이드, 청자벽돌 쌓기 체험 등이 마련된 청자축제는 16일까지 이어진다. 청자의 멋에 성큼 다가갈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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