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사로 본 '총격요청사건' 전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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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검찰 수사 결과 '판문점 총격 요청사건' 은 출세욕에 눈이 먼 정치권 주변의 일부 인사들이 시도한 무모한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됐다.

검찰이 밝힌 사건 전모는 다음과 같다.

◇ 범행 동기 = 진로그룹 비상임 고문 한성기 (韓成基) 씨, 청와대 행정관 오정은 (吳靜恩) 씨, 대북 교역사업가 장석중 (張錫重) 씨는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후보의 지지율이 제자리 상태에 머무르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李후보가 당선될 경우 吳씨는 승진 또는 정계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고 韓씨는 안기부장 특보직을, 張씨는 대북사업중 발생한 현대측에 대한 채무 2억원 변제 유예 등 경제적 보상을 기대했었다고 검찰은 밝혔다.

◇ 총격 요청 공모 = 韓씨는 吳씨로부터 張씨가 지난해 11월 북한 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로부터 방북 초청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자 "국민회의가 李후보의 아들 병역문제를 다시 터뜨리려 한다.

이 공작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휴전선 총격전이다.

張씨 방북때 북측에 판문점 총격을 요청하자" 고 제의했다.

이들은 11월말 총격 요청 계획을 확정하고 판문점에 TV카메라를 설치하는 계획도 마련했다.

韓씨 등은 옥수수 박사 경북대 김순권 (金順權) 교수의 방북 추진건을 이 계획과 연계시키기로 하는 한편 공안기관에 적발돼도 총격 요청 부분은 함구하기로 결의했다.

◇ 접촉 = 韓.張씨는 12월 10일 오전 베이징 (北京)에서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이철운 등에게 "김대중 후보의 친북 자료를 건네달라" 며 책임있는 북한측 인사와의 면담 주선을 부탁했다.

이들은 같은 날 밤 아태평화위원회 참사 박충을 만나 韓씨가 '이회창 총재 특별보좌역' 이라고 적힌 명함을 건네면서 "TV화면이 잘 잡히는 판문점에서 무장군인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무력시위를 해 긴장을 조성해줄 것" 을 요청했다.

韓씨는 "도와주면 그 대가로 '옥수수 박사' 김순권 교수를 12월 20일까지 보내주고 비료.영농자재 등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 고 제의했다.

이들은 12월 11, 12일 3, 4차 접촉을 하며 총격 요청을 제의했으나 朴참사관이 "공화국에 전문을 보냈는데 회답이 없다" 며 일단 거절의사를 밝히자 성과없이 귀국했다.

◇ 배후 여부 = 96년 9월 우연히 이회성 (李會晟) 씨와 알게 된 韓씨는 지난해 9월 李씨와 장진호 진로회장 면담을 주선했으며 오정은씨를 소개하는 등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韓씨는 안기부에서 "이회성씨에게 '북한 사람들을 만나 96년 4.11 총선때와 같이 북풍을 일으켜 대선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겠다' 는 보고를 했다" 고 진술했으나 검찰에서는 "총격 요청사건을 거론한 적이 없다" 고 번복했다.

韓씨는 또 베이징으로 갈때 李씨로부터 5백만원을 받았다고 안기부에서 진술했으나 검찰조사에선 이를 부인했다.

이회창 총재에게 이 사건 관련 보고를 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韓.吳.張씨 모두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韓씨가 중국에 가기전 다섯차례, 귀국후 여섯차례 이회성씨

와 전화통화를 했다고 진술한 점으로 미뤄 李씨가 판문점 총격 요청사건을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계속 수사할 방침이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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