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속담과 과학]'가을볕에는 딸을 쬐고 봄볕에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하늘이 맑고 화창한 요즘 '가을볕에는 딸을 쬐고 봄볕에는 며느리를 쬔다' 는 속담이 생각난다.

며느리보다는 딸을 더 아끼는 시어머니의 심정을 빗댄 말. 이 속담이 시사하는 것은 가을볕과 봄볕이 언뜻 비슷한 것 같아도 가을 쪽이 더 낫다는 뜻. 과연 가을볕과 봄볕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기상청의 자료를 뜯어보면 이와 같은 조상들의 '체감 (體感) 속담' 이 예상외로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을볕과 봄볕의 가장 큰 차이는 가을볕의 일사량이 훨씬 적다는 것. 지난 30년 동안의 기상청 관측자료에 따르면 봄철 (3~5월) 의 평균 일사량은 평방 미터당 약 1백50메가주울 (MJ) 로 가을철 (9~11월) 의 99MJ에 비해 50% 이상이나 많다.

들녘에 나가 일하다보면 땀도 나고, 얼굴도 그을릴 텐데 같은 시간 일한다면 가을 쪽이 훨씬 나을 것은 자명한 이치다.

봄.가을볕이 차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일조시간일 듯. 봄은 춘분 (3월22일께) 을 기점으로 낮시간이 길어지는 반면,가을은 추분 (9월22일께) 을 시작으로 낮이 점차 짧아져 일조시간이 줄 수밖에 없는 것. 봄.가을 대기 중 습도 차이도 일사량의 차이를 가져온다.

가을철 평균습도는 69%로 봄철의 63%보다 더 높아 가을에는 지상에 도달하는 햇빛이 줄어든다.

이는 습도가 높을수록 투과하는 햇빛양이 줄기 때문. 이런 사실은 봄.가을볕이 단위 시간당 차이는 크지 않을지라도 총량에서는 가을이 사람한테는 대체로 쾌적하게 느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 나라와는 반대로 남반구인 호주나 뉴질랜드에서는 시어머니가 딸은 봄볕에 내보내고 며느리는 가을볕에 내보낼 지도 모르겠다.

최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