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엔 정년이 없어요. 할 수 있을 때까진 일해야죠. " 한국야쿠르트 서울 오장직매소의 '맏언니' 이계환 (李桂煥) 씨는 '야쿠르트 아줌마' 가 아니다.
올해 나이 칠순. 손자.손녀가 8명이나 되는 할머니다.
야쿠르트를 배달한 지 어느새 25년. 전국 1만1천여명의 야쿠르트 배달원 중 두번째로 나이가 많다.
그러나 매일 새벽 베이지색 모자와 흰색 폴라를 받쳐입고 집을 나설 때는 지금도 첫 출근 때 기분의 '야쿠르트 아줌마' 다.
매일 오전 4시10분쯤 일어나 5시30분 서울불광동 집을 나서 버스로 직장에 도착하면 6시 전후. 이때부터 정오 무렵까지 을지로3가와 인현동1가 가정.사무실 2백50여곳을 돌며 '정성' 을 배달한다.
하루 보행거리는 약 5㎞. 6백여개의 야쿠르트가 가득 든 40㎏짜리 가방을 밀며 하루같이 이 일을 해왔다.
지금까지 지구를 한바퀴 (약 3만8천㎞) 돌며 3백만여개의 야쿠르트를 배달한 셈이다.
"성실하게 잘해야지 하는 생각뿐이에요. 딸 넷 결혼식도 모두 일요일에 했을 정도니까. 넘어져서 하루 쉰 것만 아니었으면 개근하는 건데…. " 막내아들이 초등학교 2년 되던 72년, 허전한 마루를 쳐다보며 '나도 일이 있어야겠구나' 하고 생각한 후 야쿠르트 배달을 시작했다.
강산이 두번 넘게 바뀌는 동안 참 많은 것이 변했다.
25원 하던 야쿠르트가 지금은 1백10원. 쇠고기 한근에 5백30원, 신문 구독료 2백70원, 버스비가 12원하던 당시가 어제만 같다.
"요즘엔 세상이 더 빨리 바뀌는 것 같아요. IMF 이후 식구 같은 고객들이 하나 둘 없어질 땐 가슴이 아파요. "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배달하기 위해서는 보통 한 구역을 네차례 정도 뱅글뱅글 돌아다녀야 한다.
그렇게 매달 번 1백20여만원은 생활비와 외손자.손녀 과자값으로 쓴다.
남편은 물론, 이젠 어엿한 가정을 이룬 네 딸과 아직 미혼인 막내아들은 새벽같이 집을 나서는 게 안쓰러워 "그만하라" 고 합창하지만 "그만두면 병날 것 같다" 는 고집을 꺾진 못했다.
오장직매소 나세균 (28) 소장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늘 웃고 사는 할머니가 계셔서 마음이 든든하다" 고 말한다.
요즘 李씨는 내년 2월 9박10일 동안 미국여행 떠날 꿈에 젖어 있다.
지난 22일 야쿠르트대회에서 동료 17명과 함께 근속 25년 상으로 받은 것이다.
일흔이 넘어도 땀방울이 주는 대가는 여전히 달콤하다.
정형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