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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베일 속 세 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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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일반적으로 북한 정권은 하나의 거대한 범죄 조직으로 비친다. 이 ‘은둔의 왕국’을 지배하는 통치자들은 아편을 팔고, 무기 제조기술 암시장을 운영하며, 시리아와 파키스탄 같은 나라에 미사일과 핵 기술 정보를 밀수출해 돈을 번다고 한다.

또 여권과 화폐 위조로 부정한 이익을 얻는다고 널리 알려졌다. 그중 일부는 과장됐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북한은 중국에서 제작된 100달러짜리 위조 지폐를 단지 유통시키는 역할만 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북한을 통치하는 일 자체가 오점투성이긴 하지만 수익성이 좋은 특권이라는 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구의 약 3분의 1이 영양실조를 겪는데도 북한의 지도자들은 400억 달러 규모의 경제(황금을 비롯해 풍부한 천연자원에 의존한다)를 마음대로 주무른다.

그렇다면 과연 그 황금 같은 값어치를 지닌 절대 권력을 누가 거머쥘까? 전체주의 국가에선 권력 승계가 언제나 미묘한 문제다. 특히 은둔의 왕국인 북한의 경우는 누가 차기 권좌에 오르느냐가 이웃나라와 미국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그 특권에는 핵무기 통제권, 어쩌면 궁극적으로 도쿄 아니면 하와이를 겨눌지도 모를 결정권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현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대는 모습이다. 1년여 전 뇌졸중이 왔다고 알려졌고 어쩌면 암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68세인데도 공개석상에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모습을 드러낼 때는 병약하고 딴 데 정신이 팔린 듯 보인다.

북한 문제라면 뭣 하나 확실한 게 없기 때문에 그의 정확한 건강 상태는 여전히 정보 담당자들 사이의 논란거리다. 일부 관리(민감한 정보 문제라며 익명을 요구했다)는 김정일이 알려진 만큼 건강이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김정일은 세 아들 중 한 명에게 권력을 계승하는 문제를 심각히 고민하는 모양새다.

세 아들 중 누구도 지금으로선 통치자의 임무를 떠맡을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듯하다. 그들은 사담 후세인의 사악한 자식들인 우다이와 쿠사이만큼 가학적 성향을 지닌 방종한 인물로 비치진 않는다. 오히려 부친처럼 서방 문물을 끔찍이 좋아한다. 별나긴 해도 크게 해롭지 않은 성향이다.

예를 들어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외국 손님들에게 자신이 소장한 영화가 2만 편이나 된다고 자랑했다. 한번은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대사에게 장-클로드 반담이 주연한 ‘서든 데스’를 입수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반담은 영화배우 중 김정일의 우상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의 아들들은 각각 아르마니(명품 신사복), 미 프로농구(NBA) 스타들, 에릭 클랩턴(영국 기타리스트 겸 팝 가수), 디즈니랜드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중에서 가장 베일에 싸인 인물이 막내 김정운이다. 어쩌면 그가 후계자로 지목됐기 때문에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국제적인 불량 국가로 널리 알려진 이 이단적인 독재 체제를 장악할 만한 능력이 있을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뉴스위크는 최근 김정일의 세 아들이 지나온 인생 행로를 추적했다. 후계자에게 걸린 특권이 그처럼 크지 않다면 이들의 이야기는 우스꽝스러운 코미디라고 말해도 좋을 듯하다.

세 아들 모두 자신의 혈통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북한에서는 그 혈통이 모든 권력의 근원이다. 북한 권력을 세운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은 처음엔 일본군, 그 다음 한국전쟁에선 미군이라는 제국주의와 투쟁한 공로로 정통성을 인정 받았다. 그의 뒤를 이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은 10년에 걸쳐 지도자 수업을 거쳐 적수들을 제압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한번은 야심만만했던 이복동생 김평일을 핀란드 대사로 내치기도 했다. 김일성 사후 4년 뒤인 1998년 김정일은 ‘선군 정책’을 선포하고 장성들에게 롤렉스 시계와 렉서스·BMW 등 고급 자동차를 선물하면서 권력의 기반을 다졌다.

김정일의 아들 중 적어도 한 명은 최고 부자들의 자녀가 다니는 스위스의 학교를 다녔다. 1992년 가을 두 소년(둘 다 초등학교 4학년으로서는 약간 나이가 들어 보였다)이 스위스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자동차로 몇 분 거리에 위치한 베른국제학교(ISB)에 리무진을 타고 갔다.

(스위스인들은 늘 신중하다. ISB의 교무 책임자는 그 아이들이 북한 외교관들의 아들로 여겼지 그 이상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질문을 많이 하지 않았다”고 그가 말했다.)

두 소년은 성탄절 축하공연에 참가했다(영어가 서툴러 표지판을 만들어 치켜들었다). 1월이 되자 그들은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푸른 체육복 대신 청바지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그 두 소년 중 한 명이 김정일의 2남 김정철이었다. 학년에 어울리지 않게 나이가 많아 보였던 나머지 한 명은 그의 경호원이었다. 김정철은 농구광이었다.

시카고 불스 팀을 좋아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로 농구실력은 서툴렀다. 한 급우는 그가 슛을 쏠 때면 위가 아닌 옆으로 뛰는 버릇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의 경호원은 ISB 대표팀에 선발됐다. ‘박철’이라는 가명을 쓴 김정철은 말수가 적고 온순한 소년이었던 듯하다.

그가 쓴 시 몇 편이 학생 문집에 실렸다. 그중 하나는 1990년대 중반인 6학년이나 7학년 때 쓴 작품으로 그 학교와 관련된 익명의 제보자가 뉴스위크에 제공했다. ‘나의 이상적 세계’라는 제목을 단 그의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만약 내가 이상적인 세계를 가진다면 무기나 원자폭탄은 허용하지 않겠다. 할리우드 스타 장-클로드 반담과 함께 모든 테러리스트를 무찌르겠다.

사람들이 마약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 김정철은 다소 섬뜩한 내용의 단편도 지었다. ‘내 아버지는 유령’이라는 제목으로 아버지가 유령인 체하며 자신을 따라다니며 괴롭힌다는 내용이다. 일부의 전언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그가 너무 나약해 후계자가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장남 김정남이 후계자로 가장 유력하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2001년 김정남은 위조된 도미니카 여권을 사용한 혐의로 도쿄에서 발각돼 추방되는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도쿄 디즈니랜드에 가려고 했다. 과체중에 당뇨 환자로 의심되는 김정남은 그 이래 기자들에게 정치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치장용 고급 액세서리를 구입하거나 착용하는 데 관심이 더 많은 듯하다. 그는 마카오에서 아르마니 운동모자에다 버버리와 폴로 랄프 로렌 셔츠, 선글라스를 쓰고 카메라에 잡혔다. 막내 김정운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정보에 관련된 문제라며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정부 소식통들은 그 역시 어린 나이에 스위스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학교에 다녔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가장 많이 인용되는 민간 소식통은 김정일의 생선초밥 요리사로 일했던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다. 그는 2001년 탈북해 일본으로 되돌아간 뒤로 ‘은둔의 왕국’ 북한의 왕궁 생활을 수시로 이야기해 왔다. 후지모토의 주장에 따르면 김정일은 막내 김정운을 가장 좋아했다.

정신적으로 더 강인하고 둘째보다 아버지를 더 닮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정철이는 너무 여성적이라서 내 뒤를 잇기는 어려워”라고 김정일이 참모들에게 말했다고 후지모토가 전했다. “하지만 정운이는 나를 빼닮았어.” 후지모토는 한국의 한 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막내 정운을 “배짱 두둑한 사람”이 되도록 키웠다고 주장했다.

김정운은 일곱 살 나이에 운전석을 높인 벤츠 600을 몰았으며, 어린 시절부터 술을 마시고 군복을 입었다고 후지모토는 주장했다. 열두 살 때 여동생이 그를 “오빠”라고 부르자 김정운은 자신을 “대장 동지”라고 부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선 그는 국민을 염려한 듯하다.

EVAN THOMAS, SUZANNE SMALLEY 기자 / 번역·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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