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현 소설집,윤대녕 장편 잇따라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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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 세기를 다음 백년으로 넘기는 우리는 불안하다.

인간과 사회를 위한 숱한 혁명과 사상으로 쌓아올린 20세기. 그러나 지금 사회체제도 사람마다도 가슴이 뻥뚫려 찬바람만 휑하다.

이 사회적.인간적 불안의 뿌리를 들여다보며 다시 희망을 모색케 하는 소설집 두권이 나왔다.

김영현씨는 소설집 '내 마음의 망명정부' , 윤대녕씨는 장편 '달의 지평선' 을 펴냈다.

각기 80, 90년대 우리의 소설성을 대표하는 작가들로 불안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세대적 편차를 드러낸다.

"이 시대를 특징 짓는 단 하나의 단어를 들라면 그것은 '불안' 일 것이다.

일차대전 후 실존주의와 함께 지식인의 가슴 속에 우울하게 자리잡았던 그 단어가 지금 우리들의 가슴 위로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고 있다.그러나 그때의 불안 속에는 아직 불온한 희망이 있었고, 어둠과 같은 따뜻함이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불안은 얼마나 차가운 불안인가. "

지금을 '차가운 불안의 시대' 라 서문에서 단정한 김영현 (43) 씨의 '내 마음의 망명정부' (강刊) 는 양심적 지식인의 마음 속에 드리운 불안의 실체를 드러낸 중.단편등 7편을 싣고 있다.

84년 등단한 김씨는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해남 가는 길' 등의 소설집을 펴내며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열정과 개인적 실존 문제를 동시에 끌어안아 80년대 구호적 뼈대만 남은 민중문학에 살을 붙여 인간적 피를 돌게했다는 평을 듣는다.

이번 작품집에도 '불안' 은 시대적, 인간적 측면에서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

표제작은 눈처럼 새하얀 새의 죽음을 통해 시대와 자신의 내면을 참담히 들여다보는 지식인을 다루고 있다.

80년대 운동권으로 지금은 아내 월급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주인공에게 운동권 선배가 월부책을 사라한다.

달동네 자취방에서 한솥밥 먹으며 좋은 세상 만들겠다던 순수한 열정은 이제 고작 월부책을 사느냐 마느냐의 경제적 갈등만으로 남은 것인가.

그러면서 고문의 어두운 방을 떠올린다.

실컷 당하고 내팽개쳐진 어두운 방, 그 어둠은 걸레처럼 찢긴 육신을 감싸주면서 자신 속에 깃들인 어떤 고귀한 음성을 새어나오게 하며 생명의 기운을 줬다.

그 죽음.무덤과도 같은 고문의 어두운 방, 불안의 끝은 곧 사회적 열정과 개인적 자아가 만나 다시 태어나는 곳이다.

지금은 그런 깊고 통합된 마음 속으로 침잠, 망명해 새 세기의 희망을 꿈꿀 때라는 것이다.

"생의 교각이란 누구나 스스로 세워 건너가야 하는 법이다. 또한 그것은 자기 불안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반드시 건너가야만 하는 다리이기도 하다. 끝에 또 남루한 그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 90년 '문학사상' 을 통해 등단한 윤대녕 (36) 씨는 '은어 낚시 통신' 등의 창작집과 장편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등을 펴내며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90년대 감성의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에 펴낸 장편 '달의 지평선' (2권.해냄刊)에서도 윤씨는 불안하지만 자신 전부를 짊어지고 건너야만할 삶의 다리를 시공 (時空) 을 초월해 놓고 있다.

'달의 지평선' 은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차는 달과 같은 존재의 환원성을 사랑의 역정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운동권에 몸담았다 동지인 여인과 결혼한 주인공 창우. 그러나 곧 파경에 이르고 만다.

그 뒤 TV 드라마 배우가 된 창우에게 전혀 다른 성격의 여인 주미와 수연이 차례로 짖은 인연처럼 지나쳐가고 결국 헤어진 아내와의 재회로 나간다는 것이 이 작품의 기둥 줄거리다.

얼개는 한 남자의 여성편력이란 통속성을 띠고 있으면서도 이 작품은 사랑과 '나' 라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하게 하고 있다.

만삭의 어머니가 몸을 던진 우물에서 태어난 주미, 그녀는 먼먼 과거로부터 주인공을 자유롭게 놓아주지않는 주술적 힘으로 작용한다.

반면 생의 무게를 느끼지도 지지도 않으려는듯 세계를 날아다니며 지극히 가볍게 사는 수연, 그녀는 주인공에게는 확산과 자유의 천사와 같은 여성이다.

오직 주관대로 전통과 최첨단 여성의 삶의 양식을 오가며 불안해하던 주인공은 드디어 그 둘, 우주적 원심력과 구심력이 결합된 여성성을 아내에게서 찾은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세기말적 불안을 탐닉하거나 호들갑 떨지않는다.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 또는 주관과 객관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그것을 극복하려는 소설적 자세가 진지하고 믿음직스럽게 읽힌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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