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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경제포럼]그린벨트 해제 기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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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그린벨트 (개발제한구역) 를 조정하기 위한 정부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실태조사를 마친데 이어 이달 말까지 조정기준에 대한 정부의 초안을 마련하고 공청회를 거쳐 12월말에 최종안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그린벨트 해제, 무엇이 쟁점인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참석자]

양병이 (楊秉彛)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김경환 (金京煥) 서강대 교수

사회 : 음성직 중앙일보 전문위원

▶사회 = 건설교통부가 최근 조사하니 그린벨트 지정 이전부터 집을 짓고 살던 사람은 10만명 내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람들 때문에 개발제한구역을 조정해야 하는 것인가.

▶양병이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 =그린벨트에 사는 사람들은 사실 당초보다 줄었다.

음식점 등에 대한 규제가 조금씩 완화되면서 원래부터 살던 사람들은 집을 팔고 많이 떠났을 것이다.

▶김경환 서강대교수 (건교부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협의회 위원) =그린벨트내 거주민은 90년대 들어 꾸준히 감소해왔다.

규제를 완화 했음에도 불편했기 때문이 아닐까. 원주민의 민원해소차원이 아니라 국토의 효율적인 사용, 국민 전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

▶사회 = 그린벨트 거주민들은 양극화 돼있다.

큰 집에 사는 부자도 있지만 불량주택에 세들어 사는 이들도 있다.

누구를 위한 개발제한구역 조정인가.

▶양원장 = 좋은 집 사는 계층은 그린벨트를 푸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녹지가 많아야 쾌적한 주거환경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렵게 사는 계층은 그 반대다. 좁은 집을 마음껏 넓히고 싶기 때문이다. 불량주택에 세든 사람은 오히려 해제되면 집세가 오를까봐 걱정이다.

▶김교수 = 우리 나라의 경우 도시용지는 5%밖에 안된다.

우리처럼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에서 이 정도의 면적으로는 제대로 된 도시의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 영국은 11%가 된다.

그린벨트로 인해 우리가 치르는 대가도 만만치 않다. 대도시의 주택가격 상승은 물론 신도시 건설에 따른 도로와 기간시설 건설에 많은 비용을 치렀다.

그린벨트의 사회적 비용을 생각해야 할 때다. 역대정권이 도시용 토지공급을 늘리기는 했지만 효율적인 위치가 아니었다. 전국민이 그린벨트에 영향을 받는다.

▶양원장 = 그린벨트의 대가도 있지만 혜택도 있다. 삶의 질을 높이자는 게 시대적 요청이다. 민선시장 등장 이후 더욱 강조되는 현상이다. 녹지는 한번 개발되면 거꾸로 되돌리기가 불가능하다. 우선 보존에 치중하고 실질적 수요가 있을 때 개발해도 늦지 않다.

▶김교수 = 물론 개발이 능사라고 생각지 않는다. 임야에 손대자는게 아니다. 그린벨트를 그린벨트답게 만들고 나머지를 개발하자는 것이다. 농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사회 = 도시전문가들은 모 (母) 도시와 위성도시간 연담 (連擔) 개발로 도시가 무질서하게 팽창되는 것보다는 사이에 녹지대를 두고 허파구실을 하게 하는 개발수법을 주장한다.

그린벨트는 사실 박정희대통령 혼자 내린 결정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의 논란 끝에 내린 결론이 아닌가.

▶김교수 = 그린벨트 외곽에 신도시를 건설해 장거리 통근인구와 대기오염이 는다면 이른바 그린벨트의 허파구실에 얼마나 효용성이 있겠는가 따져봐야 한다.

영국에서도 지속가능한 성장의 관점에서 비슷한 문제가 아직 논란을 빚고 있다. 문제는 그린벨트의 허파구실을 무작정 공리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일방적 풍토다.

▶사회 = 실제로 도시의 허파구실을 못하는 그린벨트도 많다. 그동안 정부의 정책엔 문제점이 없었는가.

▶양원장 = 그린벨트에 대한 일관된 정책이 없었다. 일단 묶어 놓고 반발이 커지거나 선거 때만 되면 조금씩 풀어주었다. 그린벨트로 지정됐다 해도 언젠가 풀릴 거라는 비합리적 기대감만 키웠다.

더구나 정부는 그린벨트에서 이런 저런 공공 건물을 다지었고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도 막지 못했다. 원칙도 없고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었다. 국토종합개발계획에도 그린벨트의 언급이 없다는 것은 문제다.

▶사회 = 도시에 대한 토지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구체적 근거를 들어달라.

▶김교수 = 그린벨트 면적이 전체 도시용 토지보다 조금 많다. 더구나 그 대부분이 대도시에 인접해 있다. 도시는 자연스럽게 뻗어나가도록 해야 한다.

그린벨트 안에서는 맨땅도 손 못 대게 하고 외곽에서는 녹지도 과감하게 개발해 버리는 어이없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된다.

수도권이나 대도시 그린벨트는 해제해서 안된다고 하는데 진짜 수요가 있는 곳은 바로 그 곳이다.

외국 도시와 경쟁하자면서 수도권집중억제의 논리를 아무런 반성 없이 고집한다면 시대착오적이 아닌가.

▶사회 = 새 정부가 선거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과정상의 문제는 없는가.

▶양원장 = 언제 어떻게 풀 것인가는 전문가들이 충분히 검토한 뒤 결정하는게 바람직하다.

대통령이 상당히 구체적인 것까지 언급하고 충분한 검토 없이 방향이 제시되면서 그린벨트 거주민들의 기대감만 높였다. 따라서 진지한 논의나, 연구 검토과정을 어렵게 만들었다.

▶김교수 = 전문가들이 모여 아무리 논의해도 의견일치를 보기는 어려운 문제다. 그린벨트가 갖고 있는 기능에 대한 인식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 = 국민회의는 '면적으로 17%를 해제해 주민 73%가 혜택을 보는 안' 을 제안했었다. 왜 그대로 결정되지 않았나.

▶김교수 = 유보된 상태로 봐야 한다. 국민회의 기획단은 17%라고 못박기보다 조정원칙을 제시했다. 그 원칙대로 하면 17% 가량 풀린다는 얘기였다.

▶사회 = 국토개발연구원, 임업 연구원 등 4개 국책연구기관이 환경평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김교수 = 필지별로 이루어지지는 못할 것이다. 녹지보존 상태 등 10여 가지의 요인을 중첩해 보게될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자료를 두고도 입장에 따라 해석이 엇갈릴 수 있기 때문에 결국은 평가는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양원장 = 문제는 어떤 요소를 고려하느냐가 중요하다. 이상적인 요소는 자료가 없어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준을 정할 때 주관성이 개입할 여지가 많아 원칙이 정해지고 난 뒤 공감대를 얼마나 형성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사회 = 묶을 때는 환경평가로 묶은 게 아니었다. 도시확산 방지가 주요인이었다.

이제 와서 환경여건을 가지고 풀겠다는 말은 무허가 비닐하우스가 난립한 데는 풀어주고 정부의 말을 잘 들어 나무를 가꾼 데는 오히려 안 풀어 주겠다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양원장 =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자연보호 상태를 기준으로 할 때 앞으로 적극적 자연훼손을 조장할 가능성도 있다.

▶김교수 = 그래서 70년대 항공사진까지 봐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환경평가는 미시적 조정이다. 도시권 별로 특성을 봐서 성장압력 등의 거시적 차원에서도 검토하고 있다.

▶사회 = 환경보호 차원에서 그린벨트는 영원히 풀지 말라는 것인가.

▶양원장 = 풀어야 할 곳도 있다. 과거엔 도시계획적 차원에서 그린벨트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제는 환경적 요소가 더 커졌다.

주민들의 입장에서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높여주기 위해 필요한 시설이 들어갈 정도의 구역조정은 필요하다.

▶김교수 = 멀리 있는 녹지보다 집 주위의 근린 공원이 세배나 더 가치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녹지를 도시 안으로 끌어들이고 수도권 인근 지역의 가치있는 땅은 개발해야 한다.

▶사회 = 수도권의 비대화가 야기하는 비효율도 너무 크다.

인구 천만 이상의 도시보다는 2~3백만 인구의 도시가 시대변화에 신축적으로 적응하면서 오래 살아남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수도권의 경쟁력이 높아지면 지방도시의 균형발전은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 이번에 안 풀리는 땅을 정부가 수용할 재원은 있나.

▶김교수 = 개발이익 환수금 등을 재원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린벨트에 그대로 묶이는 임야를 정부가 사들일 이유가 없다.

현행법으로는 공시지가로 매수해야 하는데 이에 응할 소유자가 많지 않을 것이다. 영국 그린벨트의 80%가 국유지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10% 미만이다.

▶양원장 = 집단 취락지를 푸는 문제도 간단치 않다.

이미 슬럼화 된 지역을 해제해 개발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떠 맡기기보다 정부 주도 재개발도 한 방법이다.

▶사회 = 일부 지자체도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미 그린벨트 존속을 전제로 각종 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기반시설도 문제다. 토지수용도 쉽지 않을 것이고, 재원 마련 방법도 막연하다. 대세는 해제로 기울어지고 있지만 따져야 할 요소가 너무 많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지혜를 모아야 할 것같다.

정리 = 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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