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장점유율 1위 외국기업 부쩍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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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내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며 선두경쟁을 벌이는 외국기업들이 크게 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 이후 다국적 기업의 국내기업 인수.합병 (M&A) 과 합작이 가속화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외국기업의 시장점유율이 부쩍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건전지.살충제.신문용지.폴리우레탄.건축용 석고보드.소형가전.씨앗산업 등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할인점.컴퓨터 프린터.복사기 등에서는 국내, 또는 합작기업과 치열한 선두경쟁을 하고 있다.

최봉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외국기업의 활발한 진출은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장점이 있다" 며 "기술개발 등 국내기업의 경쟁력 향상노력이 시급하다" 고 지적했다.

◇ 외국기업이 선두인 업종 = 살충제 시장은 5위권이었던 다국적 제약업체 한국존슨이 지난 4월 에프킬러를 생산하던 삼성제약을 인수하면서 단번에 1위로 떠올랐다.

또 미국 크로락스사가 지난 6월 2위인 동화약품의 살충제 사업을 인수했으며 바이엘사도 올해 관련사업에 진출, 살충제 부문은 외국업체간 경쟁무대로 바뀌었다.

건전지는 국내 기업인 로케트전기와 미국계 질레트코리아 (듀라셀.썬파워).에너자이저코리아가 3파전을 벌여왔으나 지난달 질레트가 로케트전기의 상표와 영업권을 6백60억원에 장기 임대함으로써 선두로 부상했다.

신문용지는 올들어 한솔제지.신호제지.한라제지가 잇따라 외국기업에 사업부문을 매각, 전체시장 (연간 1백56만t) 의 73%를 차지했으며 프랑스 라파즈사는 최근 국내 석고보드 생산 2, 3위인 벽산.동부한농화학의 사업부문을 인수해 단숨에 60%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했다.

씨앗시장도 마찬가지. 지난해 10월 국내 3위인 서울종묘가 스위스 노바티스사로 넘어간 데 이어 1, 2위 업체인 흥농.중앙종묘도 외국업체에 팔렸다. 한편 생리대.기저귀.화장지.미용티슈 등 위생용품 시장에서는 유한양행과 미국 킴벌리사간 합작법인인 유한킴벌리가 선두를 고수하고 있고, 쌍용제지를 인수한 한국P&G.대한펄프 등이 8천6백억원대의 시장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컴퓨터프린터는 삼성전자와 지난해말 삼성의 합작지분 45%를 인수한 한국휴렛팩커드 (HP)가 치열한 선두다툼을 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초 삼보컴퓨터의 프린터사업을 인수한 엡슨이 추격전을 펼치고 있다.

◇ 국내 시장에 대한 영향 = 외국기업의 국내 진출은 소비재를 중심으로 시장확대 가능성이 큰 업종, 또는 한 두개 기업을 인수하면 곧바로 업계 선두권을 형성할 수 있는 업종에서 두드러진다.

이처럼 외국기업이 국내시장의 점유율을 높여가는 데 대해 우려의 시각도 있지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외국기업의 진출이 더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재호 대우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국경 없는 무역전쟁 시대에 국내.외국 기업을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며 "다만 농업기반이 되는 씨앗산업 등의 매각.외자유치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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