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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여당, 말로만 정쟁 중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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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강민석 정치부 기자

1일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한나라당 전당대회 이후 우리 당이 정쟁만 하는 것으로 비춰져 매우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민생 경제 회복과 사회 갈등 통합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한나라당과의 정체성 공방에 대한 일종의 휴전 선언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다짐은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3일 열린우리당 중진 모임인 기획자문회의에서 정쟁에는 귀를 닫겠다던 신 의장은 "한나라당이 소위 정체성 위기가 경제난의 원인이라는데, 암만 생각해 봐도 신 색깔론"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최근 미국을 다녀온 장영달 의원이 말을 받아 "(정체성 논란이 있기에) 우리 당이 박근혜 대표에게 정체성을 밝히라고 한 줄 알았는데, 거꾸로 그 분이 했다고 해서 이해하는 데 오래 걸렸다"고 비꼬았다. 그는 "이해찬 총리와 동갑인 박 대표는 이 총리가 민주화 운동을 할 때'아버지 잘하십니다, 유신은 구국의 선택입니다'라는 말만 했다"고도 했다. 신 의장이 "나도 (박 대표와)동갑"이라고 하자 장 의원은 심지어 "한쪽은 철이 들었는데 한쪽은…"이라고까지 했다. 다른 참석자들도 다양한 메뉴로 공격에 가세했다.

"친일진상규명법에 대한 시비는 도둑이 제발 저린 것"(김희선), "신행정수도.남북관계 문제 등에 대한 한나라당의 정체성부터 밝혀라"(민병두), "박근혜 대표가 퍼스트 레이디 할 때 나는 긴급조치 위반으로 감옥 간 아버지 면회 다녔다"(김한길)는 등의 발언이 쏟아졌다. 한마디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 대한 성토장이었다.

그래놓고도 열린우리당은 여전히 "정쟁에는 귀를 닫고, 민생 경제 문제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열린우리당이 말하는 정쟁 중단과 민생 정치가 뭔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열린우리당의 노선이나 입장이 혼란스러운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때마다 열린우리당은 시스템이 채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해 왔다. 그러나 엊그제 한 말이 오늘 뒤집히는 것은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강민석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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