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산책] 왕의 귀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중국의 부상을 보며 세계는 데자뷰(旣視感·어떤 현상을 마치 예전에 본 것처럼 착각하는 현상)를 느낀다. 역사적인 긴 호흡으로 볼 때 한(漢), 당(唐), 명·청(明·淸)에 이어 최소한 네 번째로 세계사의 전면에 떠오르고 있는 까닭이다. 이때문에 중국의 부상은 흔히 '왕의 귀환' 또는 '부흥(復興)’ 등으로 일컬어진다.

역사통계학으로 유명한 영국의 앵거스 메디슨은 GDP 수치를 이용해 역대 중국의 위상을 추적해 왔다. 그에 따르면 전한(前漢) 말기인 서기 1년 당시의 세계 총생산량을 100으로 볼 때 중국은 25.45%를 차지했다. 32.02%로 1위인 인도를 뒤쫓으며 인도-중국의 양강(兩强) 체제를 구축한다. 이같은 인도-중국의 쌍두마차 시대는 송(宋)대까지 이어진다.

중국이 인도를 제치고 세계 1위의 경제강국으로 부상한 것은 명(明)대 중기인 1500년께다. 중국이 24.88%를 차지한 데 비해 인도는 24.36%에 그친다. 19세기 초인 1820년께 중국의 총생산량은 32.92%로 서유럽(23.02%)과 인도(16.04%)를 크게 앞지른다. 그러나 흔히 ‘아편전쟁’으로 불리는 1840년의 중·영 전쟁을 시작으로 중국은 쇠락의 길을 걷는다. 서구 열강의 포함에 유린당하고 근대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직후인 1950년께 중국은 전 세계 GDP의 4.59%에 불과한 수준으로까지 쇠퇴한 상태였다. 산업혁명 이후 서구 경제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한 데 반해 중국은 현상 유지조차 못한 결과였다. 다급한 마음의 마오쩌둥(毛澤東)은 1958년 대약진 운동을 시작하며 ‘영국을 넘어서고 미국을 따라잡자((超英趕美)’는 구호를 앞세워 강국 건설을 부르짖었으나 실패한다.

그러나 이어 등장한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이 전환점이 됐다. ‘차이메리카(Chimerica·中美國)’라는 용어가 웅변하듯이 30년에 걸친 성공적인 개혁·개방 정책은 중국을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위치로 끌어올렸다. 메디슨은 현재의 추세를 볼 때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대국으로 복귀할 시점을 2013년으로 꼽는다. 약 200년 만에 세계 최강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예측이다.

메디슨에 따르면 2015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구매력 기준)은 20.54%로 19.19%의 미국에 앞서게 된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