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세계 식량의날]여성이 지구를 먹여 살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여성이 세계를 먹여 살린다. "

사람들이 모유를 먹고 자란다는 얘기가 아니다.

여성 노동력의 식량생산 덕에 인류가 살아간다는 뜻이다.

오는 16일 제53주년 '세계식량의 날' 을 앞두고 유엔식량농업기구 (FAO)가 정한 올해의 주제이기도 하다.

FAO는 최신 통계를 근거로 세계농업인구의 50% 이상이 여성으로, 남성을 앞지르고 있다고 밝혔다.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주변 중남미지역은 농업생산의 80%를 여성이 담당하고 있고 세계 쌀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아시아는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여성 농업인력 비율이 50~90%에 이른다.

파키스탄의 경우 전체 여성노동인구의 72%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반면 남자는 45%에 불과하다.

터키의 여성 농업인구는 82%고 남성은 38%에 그친다.

전통적인 농업국가이던 우리나라 역시 여성 노동인구의 20%가 농업을 주업으로 하고 있으나 남성비율은 16%여서 여성인력의 높은 식량생산 기여도를 실감케 한다.

여성인력은 단순한 농업생산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생산물의 도정 (搗精) 과 저장은 물론 목축.가사.육아도 대부분 여성의 몫이다.

이같은 현상은 전통적 농업국가나 후진국일수록 심각하다.

아프리카의 경우 가사의 98%, 곡물도정 및 저장의 84%, 수확의 60%를 여성이 담당하고 있으며 중노동인 쟁기질도 30%를 맡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정작 식량생산을 도맡은 여성들이 누리는 권리수준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식량생산 부문은 동시에 남녀불평등의 대표적 현장이라는 게 FAO의 분석이다.

농업종사 여성의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사회제도로 인해 여성들이 소유한 농지의 비율은 세계농지의 2%에 불과한 실정이다.

세계 농업국가의 절반 이상에서는 아예 여성 농업인력의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FAO는 이미 96년 로마에서 세계 1백86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식량정상회담을 열고 ▶여성에게 농지소유 등 경제적 권리를 부여하고▶농업생산기술에 대한 교육기회에 성차별을 두지 않으며▶여성의 전통적인 농업기술정보를 수집하도록 하는 등 8개항을 결의, 실천에 옮기고 있다.

자크 디우 FAO사무총장은 "지금은 여성인력 덕분에 세계가 근근이 연명하고 있지만 농업여성의 인권이 개선되지 않은 현실을 고려하면 세계인구가 30억명이 되는 2030년에도 여성들이 세계를 먹여살릴 수 있을지 의문" 이라고 말했다.

최형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