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만시인 10주기…문단서 추모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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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나 이세상에 있을 땐 한칸 방 없어서 서러웠으나/이제 저세상의 구중궁궐 대청에 누워/청모시 적삼으로 한 낮잠을 뻐드러져서/산뻐꾸기 울음도 큰댓자로 들을 참이네. //

어차피 한참이면 오시는 세상/그곳 대청마루 화문석도 찬물로 씻고/언뜻언뜻 보이는 죽순도 따다 놓을 터이니/딸기잎 사이로 빨간 노을이 질 때/그냥 빈손으로 방문하시게. //

우리들 생은 다 정답고 아름다웠지. /어깨동무 들판 길에 소나기 오고/꼴망태 지고 가던 저녁나절 그리운 마음, /어찌 이승의 무게로 다할 것인가. "

( '대청에 누워' 중)

박정만시인 10주기를 맞아 추모사업이 활발하다.

서울 올림픽 폐회식이 열리던 88년 10월2일 오후 박시인은 봉천동 자택에서 홀로 외롭게 죽어가 경기도 양평 무궁화동산에 누워있다.

지난 10일 그 외로운 유택 (幽宅) 을 문인 30여명이 찾았다.

4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박시인은 6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시단에 나와 시집 '잠자는 돌' '맹꽁이는 언제 우는가' '서러운 땅' '슬픈 일만 나에게' '그대에게 가는 길' 등을 펴내며 한치의 빈틈 없는 언어로 그리움과 한을 올올이 엮어낸 서정시를 발표해왔다.

박시인의 시는 특히 81년 소위 한수산필화사건에 연루돼 고문 휴유증에 시달리면서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접신 (接神) 의 경지에 이르러 쓰여진 그 시들은 이승과 저승을 한묶음으로 엮는 시적 깊이와 '귀신도 울린다' 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죽음으로 몰고간 혹독한 고문에 시달렸으면서도 그의 시들은 그들을 용서, 순수시혼의 승리를 얻은 것이다.

최근 나온 시전문지 '시와시학' 가을호는 그의 대표시와 시에 대한 평론을 실어 재평가 작업에 나섰으며 박정만시인추모시비건립준비위원회를 만들어 내년 시비건립을 목표로 모금활동을 펼치고 있다.

연락 02 - 883 - 1805

양평 =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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