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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저축률, 미국 경제에 약인가 독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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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난해 상승세를 타기 전까지 미국의 가계 저축률은 늘어나는 소득 규모에도 불구하고 20년 이상 하락세를 보여왔다. 치솟는 주가와 높은 집값은 저축 대신 소비를 부추겼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퇴직 이후를 대비해 저축하던 돈을 줄였고 은퇴자들은 소비를 늘렸다. 이에 순저축률은 거의 0%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최근 2년 동안 가계 소득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주가 폭락과 함께 35%에 달하는 집값 하락으로 가계 소득은 14조 달러나 줄었다. 미국 가계 연간 가처분 소득의 140%에 해당하는 액수다. 이에 따라 개인은 퇴직 이후를 대비해 더 많은 돈을 저축하게 됐고, 은퇴자들은 소비를 줄이게 됐다. 앞으로도 저축률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계 저축률 증가로 미국은 기업 투자와 주택 건설 지원을 위한 외국 자본의 필요성을 덜 느끼게 됐다. 연 7500억 달러에 달하는 가계 저축은 외국인 투자를 일부 대체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실제 미국으로의 외국 자본 유입은 2006년 830억 달러로 최고점에 달했다가 이후 가계 저축이 급증하면서 외국 자본에 대한 의존도는 점차 낮아지고 있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외국 자본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보충하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무역적자는 여전히 미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선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여야 한다. 기본적으로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면 미국의 수출품은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달러화 가치 하락이 무역적자 해소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달러화 약세가 미국 경기를 활성화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아지는 수입품 대신 국내 상품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출 증가와 함께 내수가 살아나면 높은 저축률로 인해 전체 소비 규모가 줄더라도 고용 수준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달러화 가치 하락이 수출 증가를 촉진하지 못하고 높은 저축률이 소비의 발목을 잡는 경우다. 이럴 경우 미국 경제는 깊은 불황에 빠질 수도 있다. 현재의 달러화 약세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는 데 최대의 걸림돌은 막대한 재정적자다.

불행히도 미국의 재정적자는 앞으로 몇 년 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미 의회예산처는 향후 10년 동안 재정적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5.2%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막대한 재정적자는 가계 저축의 급증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도 있다. 저축액에 비해 재정적자가 지나치게 클 경우 기업 투자와 주택 경기 활성화를 위해 여전히 외국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 등 막대한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은 현재 기축통화인 달러화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화 수요가 줄어들면 달러화의 약세는 지속될 것이다. 더불어 무역수지 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쌍둥이 적자가 계속될 경우 미국의 경제상황은 악화돼 높은 저축률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실질금리는 높아질 것이다. 이럴 경우 기업의 투자와 주택경기 위축은 불가피해질 것이고 경기 활성화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마틴 펠트스타인 하버드대 교수·경제학
정리=유철종 기자 ⓒ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