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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만만치 않을 ‘학자금 대출제’ 부작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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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대학생이 대학교육을 받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은 등록금을 비롯해 교재비·생활비·사교육비 등을 합해 연평균 1000만원에 이른다.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 따른 것이다. 이는 극심한 경기침체로 생계여건이 크게 악화된 중산층 이하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을 매우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정부가 발표한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는 매우 고무적이다. 중산층, 특히 저소득층 가정의 과중한 대학 교육비 부담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가난해서 학교를 못 다니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슬로건하에 한국장학재단을 설립한 후 ‘맞춤형 국가장학 지원’이라는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그 일환인 이번 제도는 대학 재학 중 학자금 부담을 해소시키고 기초수급자와 소득 1­7분위(상위 30% 이하) 가정의 학생은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또 취업 후 일정소득이 발생한 시점에서 상환이 이뤄지기 때문에 채무불이행의 문제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기존 학자금 대출제도보다 진일보한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새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선 면밀한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 우선 제도 시행의 관건인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해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새 제도를 통한 수혜학생 수를 100만 명으로 예상, 향후 5년간 연평균 1조5000억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한국장학재단의 채권 발행을 통해 재원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혜학생의 수가 예상치 못한 수준으로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정밀한 차원에서 재원 마련책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학의 등록금 책정에 대한 적절한 관리시스템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새 제도는 자칫 대학의 등록금 인상을 가져와 장기적으로 학생 및 국가의 재정적 부담이 커질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교육과학기술부는 각 대학으로 하여금 ‘교육 관련 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10년부터 등록금 산정 근거를 공시하게 할 방침이다. 특히 구체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등록금 산정 근거를 공시할 수 있도록 공시지침을 마련, 대학에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대학이 합리적 근거에 따라 등록금을 책정하도록 유도해 교육수요자들의 신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한편 새 제도를 효율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선 교과부에만 국한되지 않는 범정부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 대출자 중에는 고의적으로 취업을 하지 않거나 기준 소득 이하의 직업을 선택함으로써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으려는 학생이 있을 수 있다. 이미 소득이 발생한 후 학자금을 갚는 ‘소득연계형 학자금 대출제’를 오랫동안 시행해 온 해외에서도 이런 학생이 늘어나며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이런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근로소득뿐만이 아닌 자영업자의 소득, 자산소득 등을 국세청의 협조하에 정확하게 포착해야 할 것이다. 또 대출 및 상환업무의 전산화와 표준화 등이 이뤄져야 한다. 국세청을 비롯한 행정안전부·고용보험·건강보험관리공단 등 공공기관들이 상호 협력하고 지원 방안에 대해 체계적인 준비를 미리미리 해야 한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는 학생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막대한 재정부담을 안고 시작하는 혁신적 사업이다. 이런 만큼 정치적 변동과 무관하게 제도를 지속적이고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더 나아가 이번 제도의 구체적인 운영방안에 대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 이를 통한 합의를 도출해 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이정미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