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상인 활기…유통질서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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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과자와 음료를 비롯한 생필품 유통망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제조업체가 슈퍼나 구멍가게에 제품을 대주는 대리점 대신 덤핑업자 또는 중간상인으로 불리는 속칭 '중상 (中商)' 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유통구조 왜곡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중상세력은 세금계산서가 없는 무자료 거래를 하다 보니 소매점의 탈세를 부추기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중상은 생필품을 폐업세일.덤핑.땡처리 하는 곳을 찾아 다니며 헐 값에 산 뒤 슈퍼.구멍가게에 공급해주는 신종 보따리 장수. 규모는 집계가 되지 않지만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 이후 급속히 늘어나면서 새로운 유통망으로 등장하고 있다.

서울중계동에서 슈퍼를 하는 金모 (47) 씨의 경우 최근 유명회사 대리점으로부터 구입하는 제품 비중을 60%로 줄였다.

아이스크림.과자.요구르트.라면.음료제품을 죄다 대리점에서 공급받다가 요즘에는 '중상' 이라는 權모씨의 물건으로 나머지 40%를 채운다.

金씨는 "대리점은 공급가격을 깎아주지 않으니까 중상이 주는 물건으로 겨우 채산을 맞추고 있다" 고 말했다.

'중상' 이 제3의 유통망으로 등장한 데는 할인점이 한 몫 하고 있다.

제조업체 대리점이 슈퍼에 공급해주는 가격이 할인점에서 일반 소비자에게 파는 값보다 비싼 현상이 빚어지면서 할인점 등에서 물건을 떼다 소매점에 파는 '중상' 이 등장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제과.라면.음료회사 대리점이 슈퍼에 물건을 싣고 갔다가 거절당하는 사례도 빈번해지고 있다.

한 제과회사 관계자는 "매출부진 때문에 물건을 덜 들여놓으려는 탓도 있지만 중간상인과 거래하는 점포가 늘면서 대리점이 외면당하고 있다" 고 말했다.

유명회사 대리점에서 물건을 공급받으면 마진이 15~20%인데 반해 중상 물건은 25~30% 마진이 보장된다는 것. 초코파이의 경우 대리점은 12개 들이 한 상자를 1천7백20원에 대주지만 중상은 1천5백원만 받는다.

N사 라면은 대리점이 한봉지 3백50원인데 반해 중상은 3백33원에도 공급해준다.

중상 세력이 이처럼 싼 값을 무기로 동네 슈퍼와 구멍가게 상권을 급속히 파고 들면서 제조업체 대리점이 따돌림 당하는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한 라면회사 관계자는 "대리점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다 보니 물량이 적은 경우엔 회사마다 따로 배달하면 기름 값 건지기도 어려운 형편" 이라며 "경쟁회사끼리 제품을 한데 모아 '품앗이' 형태로 대신 배달해주기도 한다" 고 말했다.

이종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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