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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자격 있으세요]3.돈을 먹이는 부모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주부 김영희 (42.서울오륜동) 씨는 며칠 전 큰 딸에게서 섬뜩함을 느꼈다.

"동생들 좀 잘 보고 있어라" 며 집을 나서는 김씨에게 중학생인 큰 딸이 대뜸 "얼마 줄 건데요?" 하더라는 것. 평소 아이에게 무심코 '심부름값' 을 주던 버릇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는지 반성하면서도 "그렇다고 동생을 돌보는 일조차 엄마에게 돈을 요구하게 될 줄은 몰랐다" 며 김씨는 고개를 젓는다.

부모의 올바른 경제관이나 가정에서 경제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일부 부유층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지난 95년 유산 때문에 한의사인 부모를 살해했던 박한상군 사건이나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로 접어든 이후 부쩍 늘어난 패륜 사건들은 다소 극단적인 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씨의 경우처럼 알게 모르게 '돈' 으로 가치를 환산하는 부모의 행동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부모를 선물이나 용돈수준으로 평가하기 쉽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돈' 에 대한 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일. 피아노학원장인 배모 (32.여.서울사근동) 씨는 "수강료를 꼭 봉투에 넣어 감사 말과 함께 보내는 가정의 아이들은 평소 수업태도나 예의도 바른 반면, 엄마가 '학원비 내고 나머지는 이것저것 사오라' 며 건네 준 지갑을 들고 와 돈을 내는 아이는 어딘지 모르게 정서가 불안해 보인다" 고 들려준다.

서울대 교육학과 문용린 교수는 "아이들이 한 푼의 용돈이라도 '부모들이 노동의 댓가로 번 귀중한 것' 으로 여기게 하려면 부모 스스로 돈을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한다" 고 강조한다.

돈의 소중함을 알면 아이들도 조심해서 사용하기 마련. 이진국 (49.사업가) 씨는 지난해 그림 그리기가 취미인 고3 막내딸에게 온 가족이 돈을 모아 한 개 3천원짜리 마커를 7만5천원어치 사주기로 했다.

문구점에 간 아이가 메모판을 빌려 2백가지나 되는 색상을 일일이 확인하여 3시간 반 만에 25개를 고른 뒤 "고맙게 잘 쓰겠다" 고 하는 것을 보고 이씨는 뿌듯함을 느꼈다고. '무조건 절약' 이 아닌 '바로 쓰기' 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

주부 박재홍 (43.인천산곡동) 는 아이들을 위해 독특한 저축법을 개발했다.

현관 앞에 '마음이 내키는 칸에 동전을 넣자' 는 말과 함께 돼지저금통 4개를 두고, 각각 '불쌍한 노인들을 위해' '부모 없는 아이들을 위해' '컴퓨터 업그레이드를 위해'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라고 붙여놓았다.

철저한 용돈 관리는 아이들에게 돈의 올바른 가치를 가르치는 최선책. 아버지의전화 정송소장은 "용돈은^일정한 사람이^일정한 기간에^일정한 양을 줘야 한다" 고 조언한다.

엄마.아빠.할머니 등 용돈을 주는 이들이 여럿이면 아이는 돈을 많이 주는 사람에게 기웃거리게 되고 기간이 들쑥날쑥하면 용돈관리를 잘못 하기 쉽다는 것. 시간개념 발달에 맞춰 유아는 2~3일, 초등학생은 5일~1주일, 중학생은 1주일~열흘, 고등학생은 보름~한달, 대학생은 한 달에 한번 용돈을 정기적으로 주도록 한다.

또 집안일로 심부름값을 주어 버릇하지 말고 친지에게 받은 돈은 먼저 출처를 부모에게 알린 뒤 저축을 유도하는게 좋다.

용돈관리습관은 사회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문교수는 "세계적 재벌인 미국 록펠러 집안에선 용돈을 다른 집과 같게 줘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재산은 자신과 무관하다는 것과 결코 자신이 학교.동네 친구들과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평등 개념을 함께 가르친다" 고 들려준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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