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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슬한 밥 위 노릇한 장어, 이렇게 복날은 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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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호 04면

“이 세상에 장어를 대신할 수 있는 음식은 아무것도 없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작품 ‘해변의 카프카’에서 장어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고등어가 없다면 꽁치를 먹을 수 있고 쇠고기가 없다면 돼지고기도 가능하지만, 장어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복날이면 이 말을 더욱 실감하게 되는데 한국의 복날 삼계탕이 사라진 꼴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일본 가다 <4> 시즈오카 첫 번째 이야기, 우나기 덮밥

그가 말한 소설 속 장어는 우나기(うなぎ)로, 뱀장어를 뜻한다. 바다에서 부화하여 하천이나 호수로 돌아와 성어기를 보내고 다시 바다로 나가 산란하는 습성 때문에 민물장어로 불리기도 한다. 바다에서 잡히는 붕장어인 아나고(アナゴ)도 있고 이빨이 가득한 갯장어인 하모(はも)도 있건만, 일본인들에게 장어 하면 역시 우나기인 것이다. 아무것도 대신할 수 없다는 맛의 비결과 복날 풍경을 위해 시즈오카(靜岡)현의 작은 도시 미시마(三島)로 발걸음을 옮긴다.

`후지산의 은혜` 미시마 우나기
미시마 우나기 유명세의 원천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옆동네 격인 하마마쓰(濱松)의 하마나 호수(濱名湖)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메이지 시대부터 장어 양식을 시작한 하마마쓰는 한때 일본 장어의 70%를 공급하는 최대 산지였던 곳이다. 그중 하마나 호수는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여 영양이 풍부하고 수온이 높아 최적의 양식 환경을 보유한 덕분에 타지방 장어에 비해 4배가량 높은 가격에 거래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참고로 장어(우나기)의 경우 대부분이 양식산이다.

이런 최상급 재료를 미시마에서는 이키지메(活き締め)란 과정을 통해 일본 최고의 장어로 재탄생시킨다. 60년 전통의 우나요시(うなよし) 세키노 다다아키(<95A2>野忠明) 사장의 호의로 그 과정을 잠시 엿볼 수 있었다.이키지메란 양식 장어 특유의 잡내와 흙냄새를 빼내기 위해 3~4일간 후지산의 지하수 격인 복류수(伏流水)에 담가둠으로써 재료 고유의 맛을 손상시키지 않고 살은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이 지역 사람들은 ‘후지산의 은혜’라고도 말한다.

이후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략의 조리과정과 같다. 일단 장어의 머리를 단단히 고정시키고 장어를 손질한다. 이때 배쪽부터 가르는 관서지방과 달리 미시마가 속한 관동지방은 등쪽부터 가른다. 장어를 찌는 과정이 추가돼 살이 덜 부서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손질된 장어는 간단하게 초벌로 굽는 과정을 거쳐 수증기로 쪄내게 된다.

이제 장어집의 자존심이라 하는 다레(タレ·양념장)가 나올 차례다. 다레는 비법 중의 비법이라 간장과 미림(みりん·단술) 그리고 설탕이나 꿀 등을 첨가한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면 장어 기름이다. 초벌구이 된 장어를 푹 담갔다가 굽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면 장어의 껍질과 살 사이의 기름이 빠져나와 다레에 농후한 맛을 더해준다고 한다.

다레를 보면 장어집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1㎝ 줄어들면 다시 1㎝를 채우는 형식으로 오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양념장이 듬뿍 발라진 장어는 꼬치를 끼운 가바야키(蒲燒き) 스타일로 굽는다. 이때 껍질을 충분히 굽고 여기에 양념장이 배어들게 하는 것이 주방장의 기술을 판가름하는 부분이다. 섬세한 손길과 축적된 경험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장어는 초밥도 좋지만 덮밥만 한 것이 없다. 우나기덮밥은 고슬고슬 잘 지어진 하얀 밥 위에 다레가 배어든 장어의 윤기 흐르는 적갈색이 대비를 이룬다. 여기에 카스테라와 같은 부드러운 촉감과 고소한 기름기, 그리고 양념장의 옅은 단맛이 쌀밥과 어울리는 순간만큼은 무라카미의 단호한 문장이 고스란히 체현된다.

한국도 일본도 뜨거운 복날 풍경
복날이면 장어 도시락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장어 전문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모습은 일본에서는 흔한 풍경으로 한국의 삼계탕 문화와 별반 차이가 없다. 모두 무더운 여름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보양식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식욕 감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비슷해 보이는 복날 풍경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먼저 한국과 일본 복날은 계산법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경우 삼복(三伏) 모두 경일(庚日)이 기준이지만 일본은 토왕(土用)과 관계가 깊다. 각 계절이 시작되기 전의 약 18일간을 토왕이라고 하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18일간의 시기에 십이지 중 소(丑)를 따져 토왕의 축일(土用の丑の日)이라 했던 것이다. 하여 한국은 세 번의 복날을, 일본은 음력으로 따져 두 번의 복날을 보낸다.

한국의 유구한 복날 풍습과 달리 일본인들이 복날 장어를 챙겨먹는 풍습은 220여 년이라 비교적 짧다. 에도 시대 난학자(蘭學者)였던 히라가 겐나이(平賀源內)가 장어 전문점을 선전할 요량으로 지어낸 홍보문구가 그 시작이다. 그가 고안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축일은 우시노히(うしのひ)로 발음이 되는데 우(う)라는 글자가 붙은 것을 먹으면 여름 더위를 이길 수 있다는 민간 전승에서 힌트를 얻어 축일에는 우나기를 먹자는 것이었다. 상술에 능한 일본인 다운 발상이다.


*일본자치제국제화협회 클레어(Clair)와 한진관광의 후원으로 2년간 일본을 방문해 다양한 요리와 온천 문화, 자연을 경험하고 그 체험을 독자와 나눌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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