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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집 수조 속 기운 없는 광어조차 안타까운 이 사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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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호 12면

물고기 의사(수산질병관리사) 이성환 원장이 통영 앞바다에 위치한 가두리 양식장에서 물고기를 해부한 뒤 현미경으로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지난달 22일 경남 통영시 산양읍 명지마을. 통영시내에서 차로 20분, 선착장에서 배로 10분. 바다 위 가두리양식장 한구석에 수술실이 만들어졌다. 파도에 맞춰 리듬감 있게 흔들리는 수술실은 단출했다. 신문지와 거즈로 수술대를 만들고 한쪽에는 현미경, 다른 한쪽에는 진료상자가 놓였다. 진료상자 위에는 해부용 칼ㆍ핀셋ㆍ가위ㆍ거즈ㆍ각종 약품이 정리돼 있었다.

물고기 병 고치는 魚의사 아시나요

하얀 운동화에 청바지, 반팔 면티셔츠를 입고 머리에는 짙은 하늘색 ‘선캡’을 쓴 10년차 ‘물고기 의사(수산질병관리사)’ 이성환(38) 원장은 노란색 수술용 장갑을 끼고 해부를 시작했다. 수산질병관리사제도는 양식어업이 늘어남에 따라 안전한 수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어패류의 질병을 관리ㆍ치료하는 전문인을 육성하는 것이다.

부산아쿠아리움 사육전시부에 근무하는 수산질병관리사 김수현씨. 송봉근 기자

첫 번째 환자는 유난히 배가 불룩 튀어나온 ‘볼락(뽈락)’. 이 원장은 “배가 많이 나오고 눈도 너무 커져 문제가 있는 것 같네요”라며 팔딱팔딱 뛰는 볼락을 조심스레 수술대에 올렸다. 날카로운 칼로 아가미 부위를 찌르자 곧바로 움직임이 멈췄다. 그러자 수술용 가위로 입에서부터 눈 옆까지를 도려냈다. 선홍색 아가미가 눈에 들어왔다. 핀셋으로 아가미를 조금 떼 현미경 위에 놓고 두 눈을 대안렌즈로 가져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 원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가미에 흡충(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이 있네요. 다른 물고기도 확인해 봐야겠어요.”

아가미 상태를 확인한 이 원장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좀 더 큰 가위를 들고 물고기의 배를 갈랐다. 배 속에 있던 간ㆍ위장ㆍ창자 등 내장이 한 움큼 빠져나왔다. 핀셋을 이용해 하나하나씩 세심히 살폈다. “위장을 보니 배가 나온 것은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사료를 너무 많이 먹어 그런 것이네요”라며 살짝 미소를 보였다. “간도 건강하고…. 근데 장출혈이 있는 걸 보니 장염이 조금 있네요.”

마지막으로 얇은 유리로 물고기의 피부를 긁어내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피부에 기생충이나 세균이 붙어 있으면 다른 물고기에 병을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검사라고 했다. 다행히 이상은 없었다.

다른 볼락 한 마리를 더 해부했지만 아가미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다행이네요. 만약 다른 볼락에도 문제가 있으면 30만 마리 전부를 치료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라며 다른 물고기 해부를 시작했다.

1년에 한번 면허시험, 합격률 50%
참돔ㆍ방어 각각 두 마리씩 해부를 마친 이 원장은 큰 소리로 “물도 깨끗하고 고기 상태도 좋네요”라고 양식장 성영기(48) 소장에게 말했다. 25년간 물고기 양식을 해 온 성 소장은 “우리는 그냥 경험으로만 판단하는데 사실 적중률이 절반도 안 돼요.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 방법도 잘 모르고요. 수산질병관리사가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적절한 처방을 해 줘 큰 도움을 받고 있죠”라고 했다. 10년 전부터 이 원장과 함께 일했는데 2007년 대규모 적조가 왔을 때 이 원장 덕분에 주변 양식장 중 유일하게 피해를 면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우리 양식장에서 물고기를 70만 마리 정도 키우는데 전염병이라도 돌면 큰일 나죠. 그래서 요즘은 대부분의 양식장에서 수산질병관리사의 도움을 받아요”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통영시에 있는 새인수산질병관리원의 수산질병관리사다. 현재 전국에는 이 원장 같은 수산질병관리사 225명이 있다. 6년째 농림수산식품부가 면허시험을 주관하는데 군산대ㆍ부경대ㆍ선문대ㆍ전남대ㆍ제주대에 설치된 수산생명의학과를 졸업해야 응시 가능하다. 1년에 한 번, 절대평가 방식으로 시험을 치르는데 합격률이 50%가 안 된다. 이 원장도 재수 끝에 합격했다. 부경대 어병학과(현 수산생명의학과) 1971년생 동기 다섯 명이 99년부터 함께 운영하는 이 병원은 커다란 창문 밖으로 통영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각종 어류의 질병 진단ㆍ치료ㆍ예방, 수입 활어 검역, 양식어장 사료ㆍ약품 공급 등의 업무를 한다. 2000년에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병을 치료하지 못해 많은 물고기가 죽게 된 경우도 있었고, 태풍 ‘매미’ 때는 모든 양식어장이 초토화돼 다른 직업을 생각해야 할 정도로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끼리 똘똘 뭉쳐 위기를 극복했고, 3년 전에는 국립수산과학원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거제도 근해 적조현상을 예측해 큰 피해를 막았다.

이 원장에게는 직업병이 한 가지 있다. 횟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물고기가 들어 있는 수조를 자세히 보는 것이다. “헤엄을 치지 못하는 물고기를 보면 당장이라도 치료해 주고 싶다”며 “하지만 실제로 해 본 적은 없다”고 크게 웃었다.

“꼬마 물고기 돌보는 유치원 선생님”
“몸이 조금씩 검게 변하는 걸 보니 우리 애들이 낯선 사람을 보고 스트레스를 받나 봐요.”

지난달 23일 부산시 해운대 부산아쿠아리움. 흰색과 하늘색 물결이 그려진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바다용 슬리퍼를 신은 김수현(25) 수산질병관리사가 “얘가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 나온 물고기예요”라며 어른 손가락 크기의 ‘클라운 피시’를 소개했다. 김씨는 부산아쿠아리움에 근무하는 유일한 ‘물고기 의사’다. 외국에서 들여오는 물고기들에 대한 검역을 담당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돕는다. 또 아쿠아리움에 있는 400여 종, 3만5000여 마리의 물고기 건강을 책임진다. 지난해 3월 아쿠아리움 근무를 시작한 김씨는 “저는 유치원 선생님이에요. 메인 수조가 초등학교라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꼬마 물고기들이 초등학교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라며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도 아이들 건강은 제가 끝까지 책임져요”라고 말했다.

김씨는 어릴 적 낚시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매주 주말이면 낚시를 다녔고, 자연스레 물고기와 친해지게 됐다. “네가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라”는 어머니의 조언을 듣고 물고기와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매일 오전 8시 수족관을 한 바퀴 돌면서 수조와 물고기 상태를 확인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한 시간가량 둘러본 뒤 건강 상태가 안 좋은 물고기가 발견되면 수질 테스트를 하거나 치료를 하고 심각한 경우 해부를 한다. 김씨는 “앞으로 바다 생물의 중요성이 더 커질 건데 아직은 관련 전문가가 희귀한 상황이에요. 그래서 수산질병관리사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김씨가 가장 좋아하는 물고기는 복어. 특히 크기가 작은 복어들을 좋아한다. “머리에 뿔이 난 것 같은 꼬마 복어가 하나 있는데 정말 귀엽다”며 “다른 물고기보다 복어가 사람을 잘 따르는 거 아세요?”라고 되물었다. 가끔 자신이 아끼는 꼬마 복어와 말을 건네면서 대화를 하기도 한다는 김씨는 “물론 복어가 말을 하진 못하지만 텔레파시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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