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고향주변 들러볼만한 유명 장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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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장터에 가면 잊혀졌던 옛추억의 편린들을 하나 둘 되찾을 수 있다.

먼동이 트기 전. 아직 밖은 어둡지만 전등불을 훤히 밝힌 밥집에는 아침을 거르고 나온 행상들로 시끄럽다.

국밥과 막걸리 한사발로 요기를 한 행상들이 담배를 빨며 좌판을 펼쳐놓는다.

물건을 사러온 아줌마들과 흥정을 하는 행상들. 제법 붐빈다 싶으면 '뻥이오' 를 외치는 뻥튀기장수와 약장수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한낮의 이러한 열기도 해질 무렵이면 서서히 식어간다.

하나 둘 좌판을 걷고 보따리를 품에 안은 채 뜨거웠던 삶의 현장을 떠난다.

추석 귀향길에 들러볼만한 장터를 소개한다.

예년보다 홀쭉해진 지갑을 들고 나서는 추석 귀향길. 젯상에 올릴 제수와 선물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장터. 이곳에서는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무렵' 에서 휘영청 밝은 보름달아래 장터를 찾아 길을 떠나는 허생원과 동이의 모습도 찾을 수 있다.

◇ 모란장 (성남) =서울에서 쉽게 시골 장터의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는 곳. 4.9일장으로 3천평이 넘는 대원천 하류 복개지는 각지에서 몰린 장꾼들로 붐빈다.

콩등 잡곡과 고추.참기름등 먹을 거리가 지천이고 눈요기 거리도 많다.

각설이 타령을 하는 테이프장수와 홍두깨로 반죽한 칼국수를 차려내는 간이식당까지 모란장엔 활기가 넘친다.

◇ 양평장 = '용문사 은행나무' 로 유명한 양평. 요즘 양평장에서 자주 보이는 특산물은 은행과 더덕. 읍내 상설 종합상가 뒤편과 철둑길밑 천여평의 부지에 장이 들어선다.

은행은 소변을 억제해주는 약리작용을 한다.

옛날 딸이 시집가는 날이면 어머니들은 딸이 가마 타고 먼길을 가는 동안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볶은 은행을 먹였다.

그래서 귀향길에 만나게 되는 심한 교통체증이라도 볶은 은행을 몇알을 미리 먹어두면 소변을 참을 수 있다.

◇ 설악장 (가평) =가평은 '밤 줍는 고장' .설악장의 명물은 밤과 사과. 특히 밤장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밤은 옛날부터 시신과 함께 무덤에 묻었고 지금도 제삿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과일이다.

밤은 비상식량으로 적격이어서 저승길에서도 굶주림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맛과 영양가가 있고 쉽게 부패하지 않으며 운반이 편한 것이 밤의 장점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전쟁.흉년등 어려운 고비때마다 밤을 애용했다.

◇ 진부장 (평창) = '메밀꽃 필 무렵' 의 산실 평창. 진부장을 돌아보면 메밀외에 당귀.작약.지황등 각종 약재가 저마다 독특한 냄새를 풍기며 나그네를 맞이한다.

여기에 옥수수막걸리를 한사발 들이키거나 간장을 안뺀 시커먼 된장찌개를 먹다보면 추석 연휴가 짧다고 생각된다.

◇ 영양장 = '육지속 섬' 으로 불릴 정도로 내륙 깊숙이 위치한 영양. 영양의 산천은 지난달부터 고추의 빨간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영양고추가 유명한 것은 매운맛과 함께 단맛이 나고 빻으면 가루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 구례장 = 전남 구례는 '3대 (大) 3미 (美)' 의 고장이다.

3대는 지리산등 주변에 큰 산이 많아 산대 (山大) , 섬진강이 있어 강대 (江大) , 비옥한 분지가 있어 야대 (野大) 를 일컫는다.

3미 (美) 는 경관미.풍요미.인정미를 뜻한다.

이번 귀향길 구례장에 들리면 빨갛게 익은 과실을 따서 씨를 뽑아버리고 말린 산수유가 장터에 널려 있다.

산수유는 신장이 약하거나 소화불량인 사람들이 애용하는 약재다.

송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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