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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횡포에 속 끓는 납품업체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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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수년간 방송사에 프로그램을 납품해 온 독립제작사 A프로덕션. 지난해 방송사 간판 오락프로의 한 코너를 맡아 만들던 중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다.

총 40회 계약분의 반도 채우지 않았는데 중단하라는 통보를 받은 것.

프로 자체가 시청률이 높았고 더군다나 그 코너는 당시 화제가 되던 인기코너였다. "계약파기에 대한 정당한 이유없이 회사 사정이 어려워 직접 만들겠다고 하는데 기가 막혔다. 그렇다고 항의를 하면 훗날 우리 쪽에 일을 주지 않을 것 같아 참을 수밖에 없었다. "

프로덕션 관계자의 토로다. 방송사가 쏘는 전파의 영향력 만큼이나 방송사의 힘은 막강하다. 강자가 있으면 필연적으로 약자가 존재하기 마련. 약자들은 때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횡포에도 '밥줄이 끊길까봐' 눈치를 보며 어쩔 수 없이 끌려간다. 대표적인 것이 원래 계약조건을 초과해 놓고 나중에 비용을 깎자고 요구해 오는 경우다.

10년 넘게 방송사 측에 조명기를 대여해 온 B사. 조명기 3개를 사용해 드라마 촬영을 끝내자 PD가 "제작비가 예산을 초과했으니 조명을 1개만 쓴 걸로 하자" 고 '제안' 해 왔다.

"이런 일이 워낙 '안면 장사' 라 한번 사이가 틀어지면 일거리를 받기 힘들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응했다" 는 게 조명사측의 하소연. 음향 회사의 경우 밤8시가 넘는 야간 촬영은 계약한 가격에 20~50%의 시간외 수당이 추가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원칙' 일 따름이다.

C사는 얼마 전 작업을 하다 계약시간을 넘겨 밤을 샜다.

하지만 예산상 시간을 줄여 계산하자는 방송사 측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1백만원을 깎였다.

연기자들의 경우 정해진 자신의 등급보다 1~2등급 낮춰서 계약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소수의 스타급 탤런트들을 제외하곤 이런 조건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실정. IMF 이후 워낙 출연 편수가 줄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더라도 일단 일감을 잡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하지 않을 바엔 계약이 애시당초 무슨 필요가 있느냐" 는게 한 프로덕션 사장의 지적.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은 강자의 일방적인 '고무줄 원칙' 이 방송가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기선민.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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