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무역사기꾼에 국내기업 골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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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IMF 관리체제 이후 국내 무역업체들이 수출주문 확보에 쫓기는 상황을 이용해 유령은행이 발행한 가짜 신용장으로 물건을 수입한 다음 돈을 떼어먹는 사기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중소무역업체인 일송무역은 지난해 5월 브라질 교포 강모씨로부터 1백만달러어치의 직물을 주문받았다.

일송은 강씨의 주선으로 우루과이에 있는 '홍콩 프라이비트 뱅커스 (HKPB)' 로부터 신용장 (L/C) 을 개설, 동화은행에 네고서류를 제출했고 동화은행은 네고서류를 믿고 수출대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결제일이 지나도 HKPB로부터 돈이 들어오지 않자 동화은행은 현지에 확인을 했고, 결국 이 은행이 유령업체인 것으로 드러났다.

교포 강씨 역시 물건을 챙긴 뒤 자취를 감춘 뒤였다.

일송은 결국 부도를 냈고 동화은행 역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국내 K직물 역시 한 브라질 수입상과 15만달러 규모의 직물수출계약을 체결했다가 문제의 HKPB에 물려 적잖은 피해를 당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KOTRA) 조사 결과 HKPB는 모기업인 핀더만사와 함께 남미 일대에서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는 유령은행으로, 지금까지 이들에게 사기를 당한 국내 업체의 피해액은 2백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HKPB 외에도 스위스 프라이비트 뱅커스 등 여러 유령은행이 국내 은행을 상대로 사기 L/C를 계속 보내오고 있어 해당업체와 금융권의 각별한 주의가 요망되고 있다는 것. KOTRA 정보상담처 이평복 (李平馥) 부장은 "정확한 숫자가 파악되진 않았지만 실적에 쫓기고 있는 국내 무역업체와 은행을 대상으로 무역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고 지적했다.

이 부장은 또 "미심쩍은 외국은행이 신용장을 개설했을 경우 국제은행명부에 등재돼 있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특시 선적서류의 발송처가 L/C개설은행이 아닌 일반회사일 경우 개설자와의 관련성을 따져봐야 한다" 고 당부했다.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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