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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들 의사만 되려고 하면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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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년간 급속한 산업화와 더불어 의료에 있어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낮은 의료수가와 사회주의적 의료 체제는 우리 의료 서비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세계 각국이 의료 산업의 산업적 가치에 주목하고 의료 서비스 및 첨단의학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국가의 사활을 걸고 있으나 우리 의료와 의학의 현실은 여전히 경직되고 비효율적이기만 해 매우 안타깝다. 이에 우리 의학이 21세기 국가 산업으로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의사들이 좀더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의대 졸업생의 거의 대부분이 임상의사가 돼 왔지만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 등 국민 보건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립보건원.식의약청 등 정부 관련 기관뿐 아니라 환경의학.의료정보학.법의학.의료경영학 등 다양한 분야에 의료인이 진출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수요에 부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행 의학 교육 체제를 의학 전문 대학원으로 전환해 학부에서 다양한 기초학문을 이수한 뒤 대학원에서 이를 의학과 접목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21세기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생명공학(BT) 분야에 우수한 의학 연구인력이 많이 진출해야 한다.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의과학(Biomedical science) 분야가 그 핵심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자연과학.생명과학의 이론과 업적들이 산업적으로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임상 연구를 위한 의과학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이미 40년 전부터 의학-이학 박사 과정을 도입해 우수한 의과학자를 육성하고 있다. 일본도 80개 의과대학 중 도쿄(東京)대를 포함해 9개 의과대학이 연구 중심 대학이다. 그러나 우리는 41개 의과대학이 거의 모두 진료 중심 대학으로, 세계 수준의 연구 중심 대학은 전무하다. "의료는 있으나 의학은 없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신약 및 의료기기 개발, 바이오 장기 이식, 유전자 치료 등 의과학 연구 인력이 필요한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이를 지원하는 국가 차원의 투자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의사들 또한 진료의 길만 고집하지 말고 국가와 국민에 공헌할 수 있는 연구 분야에 사명감을 가지고 진출해야 한다.

셋째, 의료서비스도 산업적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 병원들도 수익을 창출하는 의료 산업의 중심이 돼야 한다. 지난해 한국인 샴쌍둥이를 분리 수술해 유명해진 싱가포르는 이미 정부와 민간 공동 협력 아래 아시아 의료 허브가 되기 위한 노력을 전략적으로 추진 중이다.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조차 의료 부문에서 과감한 시장경제를 도입해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를 중심으로 초대형 의료 허브를 구상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세계적 수준의 의료인력과 진료수준을 갖추고도 국제 경쟁력 확보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하루빨리 우리의 우수한 의료 인력을 활용한 첨단 의료센터를 만들어 국내 환자의 해외 유출을 억제하고 해외 환자 유치도 가능한 동북아 의료 허브로 발돋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첨단 의료 등 경쟁력이 확보돼야 하는 분야에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의료의 공익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오히려 경쟁력은 하락하고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 그동안 우리의 사회주의적 의료 시스템이 의료 서비스의 질을 낮추고 국민을 실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음을 지켜보지 않았는가.

우리 국민 의식과 경제 수준은 다양하면서도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요구하고 있고, 세계 각국은 의료 산업의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우리 정부와 의료계도 하루속히 급변하는 환경을 인식하고 의학 분야를 다양화하고 의료와 의학 모두 산업적 차원에서 균형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제 우리 의료 산업도 세계화에 맞추어 역동적이고 다양하게 변해야만 한다.

허갑범 연세대 명예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