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박태환 소유해야 수영계 장악” … 뿌리깊은 파벌싸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박태환이 28일 새벽(한국시간) 남자 자유형 200m 준결승 레이스를 마친 뒤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박태환은 16명의 준결승 출전 선수 중 13위에 그쳐 8명이 겨루는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로마=연합뉴스]

박태환(20·단국대)이 또 한번 고개를 떨어뜨렸다. 박태환은 28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2009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 자유형 200m 준결승에서 1분46초68의 저조한 기록으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6일 자유형 400m에서 예선탈락한 데 이어 연이은 실패다.

박태환은 경기 후 “전담코치가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면서 “마음에 맞는 전담코치를 두고 싶어도 수영계 파벌 탓에 구하기가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박태환이 말하는 파벌은 한국 수영의 해묵은 문제점으로, 이번 박태환의 발언으로 수면 위에 드러났다. 

◆박태환도 전담코치 구하기 어려웠다=박태환은 “개인코치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수영연맹과 사이가 안 좋은 코치를 구하면 뒷말이 많아진다. 그래서 결국 미국 전지훈련을 택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유능한 지도자들은 반연맹파에 많이 있는데, 이들과 전담코치 계약을 하면 연맹과의 갈등으로 훈련에 차질이 크다는 게 박태환 측 고민이다.

수영은 기록으로 승부하는 개인종목이다. 선수를 잘 아는 개인코치가 필수다. 어린 시절부터 박태환을 지도했던 노민상 경영대표팀 총감독은 대표팀을 지도해야 하는 현 위치상 박태환의 개인코치가 될 수 없었다. SK텔레콤 전담팀 관계자는 “노 감독에게 박태환의 전담코치직을 제안했지만 그가 대표팀 감독을 택했다”고 말했다.

대한수영연맹과 노 감독은 박태환이 태릉선수촌에 입촌해서 훈련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박태환은 “태릉이 훈련 환경도 좋고, 친구들도 많아 재미있다. 하지만 내가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건 개인코치”라고 말했다. 박태환은 미국 전훈에서 장거리 지도자로 이름 높은 데이브 살로 코치의 지도를 받았지만 전훈 기간은 총 12주에 불과했고, 한국에서는 태릉선수촌에 출퇴근하는 식으로 개인코치 없이 어정쩡한 ‘두 집 살림’을 이어갔다.

◆수영연맹 집행부를 둘러싼 싸움=수영계의 파벌이란 심홍택 수영연맹 회장을 둘러싼 갈등을 뜻한다. 크게 보면 ‘친연맹파’와 ‘반연맹파’다. 2000년 처음 수영연맹 회장직을 맡은 심 회장은 2005년에 이어 올 1월에도 연임됐다. 1월 회장 선거 당시 전임 대표팀 지도자 등으로 구성된 수영개혁위원회(수개위)가 심 회장 체제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면서 양측의 갈등이 증폭됐다.

수개위는 박석기 전 대표팀 감독과 심민 전 대표팀 코치 등이 주축이 됐고, 수영 원로들도 가세했다. 수개위는 “심 회장이 한국신기록 포상금을 지급하지 않고, 연 3억원 출연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도덕성에도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수영연맹은 일부 관계자들이 공금 횡령 혐의로 지난해 경찰 조사를 받았고, 심 회장 역시 개인 사업이 어려워지는 등 입지가 좁아진 상태였다. 그러나 수개위가 연맹회장으로 옹립하려던 장경우(전 국회의원)씨가 갑자기 연맹 명예회장직을 맡겠다는 조건으로 심 회장 연임에 동의하면서 수개위의 회장 교체 시도는 실패했다. 이런 일을 겪고 난 후 양측의 갈등은 더 커졌다.

◆박태환 둘러싸고 연일 잡음=박태환 측은 전담지도자를 두고 고민이 컸다. 친연맹파에는 변변한 지도자가 없고, 반연맹파의 지도자를 선임하면 대표팀과 갈등을 안고 가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수개위의 박석기 감독은 2007년 멜버른 세계선수권 당시 박태환의 스피도 전담팀 감독을 맡았는데, 당시 수영연맹은 전담팀 관계자들에게 대회 AD카드조차 발급해 주지 않았다. 박태환이 수영연맹의 공식 스폰서인 아레나 대신 스피도와 계약한 것도 미묘한 갈등을 낳았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직후엔 노민상 감독이 “김봉조 전 경영대표팀 감독에게 맞았다”면서 병원에 입원한 일도 있었다. 박태환을 둘러싼 갈등, 수영계 내부의 알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충돌이었다.

이처럼 수영계에는 연일 갈등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수영계 알력 싸움의 핵심에는 ‘박태환을 우리 소유로 해야 수영계를 장악한다’는 분위기가 깔려 있었다. 노민상 감독은 “박태환이 훈련 부족으로 실패했고, 미국 전지훈련도 성과가 없었다. 태릉선수촌에 더 빨리 들어왔어야 했다”면서 완전한 대표팀 소속이 되길 요구하는 것도, 반연맹파의 지도자들이 박태환 전담팀 지도자가 되기를 내심 바라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 때문에 박태환은 지도자를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양측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그나마 진통 끝에 한국인을 전담코치로 선임한다고 한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지도자라고 하기도 어려워 고민은 더 컸다. 박태환이 이번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악몽에 시달리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로마=이은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