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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새 행정수도에 서울대 옮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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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수도 이전 문제에 대한 맹목적인 옹호와 극단적인 반대가 충돌하면서 정치권.학계.언론계.지자체 등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문제를 슬기롭게 다루지 못할 경우 우리 사회가 반목과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제는 선동적 토론보다는 다수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렇다면 수도 이전에 대해 어떤 현실적 대안이 가능할 것인가? 필자는 크게 두 가지 중재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즉 신행정수도의 성격을 '정치.행정 중심도시'에서 '행정.교육 중심도시'로 바꾸는 것과 수도권지역의 피해의식을 완화할 수 있는 몇 가지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행정.교육 중심도시란 충청권에 이전할 대상기관으로 청와대.중앙정부기관과 함께 서울대를 묶자는 것이다. 신행정수도 추진단이 발표한 안에 의하면 이전 대상 국가기관을 행정부, 국회 및 사법부로 전제하고 있다. 국가의 중추적 권력기구들이 모두 이전해야 수도권 인구분산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런 공공기관의 이전보다 오히려 고등교육기관, 즉 대학의 이전이 인구분산에 더욱 큰 효과가 있다. 프랑스에서 인구분산을 위한 유인책으로 대학을 활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교육열이 남다르게 높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려할 경우 서울대 같은 명문대학의 이전은 신선한 사회적 충격을 주어 수도권 분산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이것은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집권당 원래의 공약에 부합할 뿐 아니라 수도권 인구분산이라는 정책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게다가 야당이 주장하듯이 정부가 애초의 약속과 달리 천도를 계획한다는 목소리를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행정부만 옮기고 입법부와 사법부를 서울에 남겨둠으로써 통일 후 수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더욱 유연한 입장을 가질 수 있다. 통일 후 새로운 수도를 정하고 행정부를 옮겨야 할 경우에도 교육기능은 충청권에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이전에 따른 지역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한편 수도권지역의 피해의식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는 수도 이전 뒤에도 서울시의 위상을 현재처럼 '특별시'로 유지하는 일이다. 서울은 단순한 대도시가 아니다. 한국을 상징하는 도시며 한국의 역사를 압축하고 있는 장소다. 따라서 서울이 수도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특별한 도시로서의 위상과 기능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행정수도의 이전으로 서울특별시가 '서울보통시'로 격하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는 행정수도 이전에 앞서 수도권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즉 선(先) 규제완화, 후(後) 행정수도 이전의 원칙 제시가 필요하다. 정부는 수도권을 경제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해 행정수도 이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중심지 육성을 위해서는 수도권의 경제자유도를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돼야 한다.

셋째는 수도 이전에 따른 이전적지를 중앙정부가 재원조달을 위한 수단으로 일방적으로 처분하지 않아야 한다. 행정기관의 이전은 해당지역에 적지 않은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지역의 입장에서는 이전적지를 지역피해를 완화할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따라서 이전적지의 적절한 활용을 위해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수도 이전 문제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최선과 최악의 극단적 싸움이 아니며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 명분을 위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허재완 중앙대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