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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도 전세매물 쌓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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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전세매물이 하루가 멀다고 쌓이는데 들어오려는 사람은 없으니…. 학원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만난 金모(45) 공인중개사는 전세매물이 빼곡히 적혀 있는 거래 장부를 보여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2월만 해도 전세품귀 현상을 빚었는데 지금은 딴판"이라며 "7월 한 달간 한 건의 거래도 못 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학원 밀집 지역인 서울 강남구 대치.도곡.개포동 일대 부동산시장에 '학원 특수'가 사라지고 있다. 이 일대는 비싼 아파트값이 부담돼 전세를 구해 오려는 학원수요가 많아 지난 2~3년간 전셋값이 초강세를 보였던 곳이다.

하지만 지난 4월 1일 EBS 수능 강의가 실시되면서 이런 수요가 급감, 일부 대형 아파트 전셋값은 겨울 성수기인 지난 2월보다 최고 2억원가량 내렸지만 거래가 안 된다. 상가나 원룸 주택 임대료도 많이 빠졌다. 도곡동 타워팰리스 1차 68평형 전셋값은 2월만 해도 7억5000만~8억원을 호가했지만 지금은 6억원(급매물 기준)에 나온다.

한 중개업자는 "수능강의 이후 다른 지역에서의 이사 수요가 50% 이하로 감소한 데다 경기 침체로 이동가구가 줄어들었기 때문"고 말했다. 개포동 LG자이 등 주변에 아파트들이 잇따라 입주하면서 전세매물이 많아진 것도 전셋값 하락을 부채질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대치.개포동 일대 사정도 마찬가지다. 대치동 미도 46평형 전셋값은 급매물기준으로 4억3000만, 쌍용 46평형은 3억3000만원으로 5개월 새 많게는 8000만~1억원 내렸다.

대치동 석사공인 김선옥 사장은 "은마 34평형 로열층 전셋값이 2억2000만원으로 학원 프리미엄이 없는 강남권의 다른 지역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 집주인은 전세를 내놓은 지 5개월이 넘도록 소화가 되지 않자 호가를 네 차례나 낮추기도 했다고 중개업자들은 전한다.

외환은행 대치동지점 관계자는 "만기가 끝난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내주기 위해 자신의 집을 담보로 급전을 빌리려는 집주인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아파트값도 덩달아 빠지고 있다. 대치동 개포우성 45평형은 지난 3월 14억원을 호가했으나 지금은 13억원으로 떨어졌다. 인근의 우성 31평형과 선경 45평형도 4개월새 4000만~1억원 떨어졌지만 거래가 없다.

대치동 한 중개업자는 "지난달 부과된 재산세가 크게 늘어나자 아파트를 내놓은 사람도 제법 된다"며 "하지만 주택거래신고제로 취득비용이 늘어난 데다 전셋값도 많이 빠져 전세를 안고 사려는 수요가 없다"고 전했다. 대치동 주변 상가들도 몸살을 앓고 있다.

대치동 T공인 관계자는 "수능방송 이후 학원생이 줄었기 때문인지 학원 임대 매물이 지난해 이맘때보다 20%늘었다"며 "권리금이 아예 없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상가 임대료도 하락세다. 대치동 A상가건물 내 34평형짜리 학원은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300만원으로 종전보다 월세가 100만원 떨어졌다.

대치동에서 상가를 분양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분양가를 3~10% 정도 깎아 팔고 있다"며 "올 초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그동안 주택 시장을 주도해온 대치.도곡동 일대 아파트 매매.전셋값이 급락세를 보여 다른 지역까지 연쇄 파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박원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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