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글로벌아이

백악관 감상용 전망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이곳이 다시 주목의 대상이 된 건 순전히 11층 옥상 테라스에 생긴 바(술집) 때문이다. 15달러 하는 칵테일 한 잔을 주문하기만 하면 누구나 하얀 백악관 건물과 넓은 앞쪽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이런 백악관 감상용 전망대는 아직까지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운이 좋은 사람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전용 헬기를 오르내리거나 부인 미셸이 채소밭을 가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딸 샤샤와 말리아가 강아지 보와 함께 뛰어노는 장면이 걸릴 수도 있다. 가장 친숙한 것은 백악관 지붕 위에 서 있는 저격수들의 모습일 것이다.

지역 언론에서 옥상 바 개점 소식을 접하고 처음 든 생각은 “9·11 테러까지 당한 나라에서?”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론 일반인들이 백악관을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지난 주말 찾아간 W호텔은 호텔 입구에서부터 늘어선 줄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호텔 측이 고용한 보안 요원들이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했지만 운전면허증 하나로 쉽게 호텔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옥상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앞에 또 긴 행렬이 섰다. 몰려든 인파로 두 사람이 내려와야 두 사람이 올라가는 식이었다. 나같이 예약을 하지 않은 사람들의 줄은 더욱 길어 결국 두 시간의 시간만 허비하고 백악관 야경 관람을 포기해야 했다. 특별한 생일파티를 마치고 흡족한 표정으로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워싱턴에 살면서 “이래도 대통령의 안전이 보장될까?” 하는 느낌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낙엽이 쌓인 지난해 가을 백악관 앞을 지나갈 때면 창살 사이로 백악관 건물이 훤히 보였다. 주변엔 경찰관 한 명이 서 있을 뿐이다. 시내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볼 때마다 백악관에서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 공항이 있다는 기우를 떨치기 어려웠다.

백악관 비밀경호팀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은 1년 평균 3000건의 크고 작은 암살 협박 속에서 살아간다.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 고층 건물에서 요인 암살이 시도된 경우가 3094회에 달한다. 백악관 지붕 위 저격수들이 더욱 바빠졌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도 W호텔의 새 비즈니스는 번창일로다.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옥상 영업을 허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내가 만난 워싱턴 시민들 대부분은 내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백악관을 볼 수 있는 자신들의 권리를 보다 중시하는 모습이었다. 이 또한 미국의 한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