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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 계기]두봉주교 상지전문대 설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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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두봉 주교는 25세때인 지난 54년 발령을 받아 한국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당시 그가 속해있던 파리외방전교회는 식민지 침략전쟁과 동시에 포교활동을 펼쳐 결과적으로 종교를 식민지배의 도구로 사용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포교방식에 맞서 교황청이 창립한 선교단체다.

이 전도회는 '침략자들과는 뜻을 같이 하지 않는다' 는 기치 아래 주로 현지인들 사이에서 사제.주교를 배출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여왔다.

두봉 주교가 "한국교회는 한국사람의 손에 맡겨야 한다" 며 정년을 14년 남긴 채 90년 한국인 주교에게 교구장 자리를 넘겨주고 자진 사임한 것도 그의 이런 출신 배경의 영향이 작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두봉 주교는 69년 안동교구장 취임 후 교육문화사업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상지전문대와 상지여중.고 설립에 깊이 참여하는 한편 불우청소년을 위한 학생회관과 야간학교를 잇따라 마련했다.

또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안동가톨릭문화회관을 세워 낙후된 지역문화의 발전에도 헌신해왔다.

두봉 주교는 특히 한국의 농촌현실을 안타까워하고 항상 농민의 편에 섰던 사람이다.

79년 정부로부터 추방명령까지 받은 오원춘 사건도 결국 이런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90년에는 땅을 사랑하고 농업에 긍지를 느끼자는 취지로 생명운동.유기농업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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