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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시행 제1회 톡트 시험을 치러보니…

중앙일보

입력


지난 18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비판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인증시험이 열렸다. 서울·인천·경기·대전·대구·부산·광주 등 전국 12개 고사장에서 제1회 톡트(TOCT, Test Of Critical Thinking) 시험이 치러진 것. 어떤 문제들이 출제되고 누가 시험을 보러 왔을까. 기자가 직접 시험에 응시해봤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토요일 오후. 서울 개포동 개원중학교로 향하는 기자의 발걸음은 바빴다. 어느 시험장에나 꼭 있는 ‘헐레벌떡 지각생’이 됐기 때문이다.학교로 들어서니 교실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빈자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날 톡트 총 응시인원은 4113명이었고 응시율(접수인원 대비 실제 응시인원 비율)은 90%로 높은 편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 답지 작성 요령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됐다. 다른 시험들과 마찬가지로 OMR 답지에 개인 정보와 답을 표시하면 되는 방식이었다. 모든 문제가 객관식이어서 그나마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안내 방송에 따라 답지에 개인 정보를 모두 적고 나자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사람들은 여유로웠다. 쉬는 시간에 단어를 외우거나 책을 들여다보며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다른 시험들과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첫 번째 시험이라 대비 방법을 모르기도 하거니와, 당장 공부를 한다고 해서 점수를 높일 수 있는 시험도 아니기 때문이다.

응시생들 중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제법 많았다. 복도에서 만난 정희철(경기외고2)군은 “대학입시에서 비교과 영역을 준비하기 위해 시험을 보러왔다”며 “친구들도 모두 이 시험에 대해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정군은 점수가 생각보다 낮으면 하반기에 다시 도전할 생각이다. 기자가 있던 교실에도 고등학생이 어림잡아 절반은 돼 보였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감독관이 꼼꼼히 신원 확인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책상마다 문제지가 놓여졌다. 문제지는 펼치는 부분이 스티커로 봉인돼 있었다. 응시생들 모두 ‘이 안에 과연 어떤 문제들이 있을까’ 궁금해 하는 표정이다. 기자도 자못 궁금했다. 봉인을 뜯고 문제를 훑어봤다. 한 페이지에 최대 두 문제가 들어가 있을 정도로 문제당 지문과 보기가 길었다. ‘시간 분배가 관건이겠군.’ 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 문제는 일단 넘어가는 요령을 부리기로 했다.

앞부분의 문제들은 비교적 쉬웠다. 상식적으로 답을 바로 알 수 있는 문제와 학창시절 수학 시간에 배운 참·거짓 명제에 대한 개념만 있으면 풀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문제는 까다롭고 어려워졌다.지문 내용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근거 찾기, 여러 가지 조건을 주고 이에 충족되는 참인 명제 찾기,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문제 해결 등 다양한 문제 유형들이 제시됐다. 수능 언어영역 문제와 비슷하기도 했고 수리영역 문제 같기도 했다. 용의자들 가운데서 범인을 찾는 문제와 같이 게임·퀴즈를 연상시키는 문제도 등장했다. 오랜만에 두뇌 근육을 사용하는 느낌이었다.

110분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시험 종료 10분을 앞두고 마지막 60번까지 풀었다. 답지에 답을 마킹한 뒤 풀지 못하고 지나갔던 세 문제를 다시 봤다. 시험시간이 끝나기 전 간신히 답을 모두 채워 넣었다. 시험의 특성상 답을 전혀 알 수 없는 문제는 없었다. 지식을 묻는 것이 아니어서 자기 나름대로의 논리에 따라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르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정답인지 오답인지는 알 수 없지만. 머리에 쥐가 나도록 문제와 씨름하다 답지를 제출하고 나니 홀가분했다.

시험을 치른 다른 이들의 소감은 어떨까. 이휘림(중대부고1)양은 “어려웠지만 시간이 모자라지는 않았다”며 “생각을 전환해 보는 연습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주석(대원외고1)군은 “암기식 교육에 익숙했는데 생각을 깊이 해야 하는 문제를 접하게 돼 신선한 자극이 됐다”며 “헷갈리는 문제, 꼼꼼히 봐야하는 문제들이 많아 꽤 어려웠다”고 밝혔다. 이군은 “초등학교때 홍콩에서 국제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는데 그 당시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이 제시하던 문제들과 비슷했다”고 덧붙였다.

응시생 중에는 대입에서 입학사정관제를 노리는 고교생들도 다수 포함됐다. 조진영(부산 학성여고3)양도 그런 경우. 조양은 “다른 비교과활동과 함께 톡트 응시경력을 내세워 입학사정관 전형에 도전할 생각”이라며“혹시 점수가 예상보다 낮더라도 응시 경험 자체가 면접 등에서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톡트 홈페이지에 게시된 예시문제로 나름의 대비까지 했다는 조양은“시간이 모자라서 아쉬웠다”며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꾸준히 응시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험은 고교생과 일반 성인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일부 중학생들도 응시했다. 고지연(청심국제중3)양은 “평소 토론·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논리력 시험이 있다고 해서 흥미가 생겨 응시하게 됐다”며 “1회 시험이라 경향도 모르고 어려울까봐 걱정했는데 실제로 보니 재미있는 문제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민사고에 지원할 계획인 고양은 “서류 전형에 이번 시험 성적을 함께 제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 채용팀에 근무하는 송재광(29)씨는 “현재 신입사원 채용시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치르는 직무적성검사는 인성검사의 측면이 포함돼 있지만 톡트는 능력 평가 시험이라 성격이 조금 다른 것 같다”며“사고력을 측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 향후 응시인원이 늘고 시험이 보편화되면 서류전형 시 평가에 참고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최은혜 기자 ehchoi@joongang.co.kr >

<사진 = 전영기 기자 yko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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