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방북취재의 언론사적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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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89년 1월 19일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는 "서독이 그 정책을 완전히 바꾸고 통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베를린 장벽은 앞으로 50년 내지 1백년은 더 계속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개월 만인 같은 해 11월 19일 베를린 장벽은 붕괴됐고, 뒤이어 독일은 통일됐다.

실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동서의 어떤 정치인도, 세계의 어떤 언론인도 이 사건을 예측하지 못했다.

90년 한국을 방문했던 한 독일 교수는 이렇게 술회했다.

통일이 이뤄진 뒤에야 비로소 학자들과 언론인들은 독일 통일에 미친 중요한, 어쩌면 결정적이었을지도 모를 언론의 역할을 점차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독일 통일에 끼친 언론의 역할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은 40여년에 걸친 공산당의 선전과 교육에도 불구하고 동독 시민 상당수가 자신들을 동독인이 아니라 독일인이라고 느끼게 한 것이었고, 서독 언론의 보도를 신뢰하게 만든 것이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언론 보도를 보면 남북한도 분단 반세기 동안 그들의 공적 세계는 물론 생활 세계의 일상적 측면도 많이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통일을 위해서는 이질화한 민족 동질성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논지가 아주 자연스럽게 들린다.

그러나 동질화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독일의 국민 통합, 즉 실질적 통일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베트남이 통일된 지 25년이 지났음에도 남북 베트남의 옛 국경은 아직 전면적으로 개방되지 않았고 동질화 작업은 점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동질성 회복 노력도 중요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동질성을 발견하고 확인하는 노력 또한 그 못지 않게 중요하고 시기적으로도 앞서야 한다고 믿는다.

동질성, 즉 같은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한 바탕 위에서 그동안 이질화한 것들을 하나하나 동질화해 나가는 작업이 추진돼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앙일보가 세차례에 걸쳐 1년 가까이 추진한 북한문화유산 답사는 몇가지 측면에서 언론사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

먼저 언론 연재물로서는 보기 드물게 충실한 내용의 '북한문화유산 답사기' 를 장기 연재해 한민족의 역사.문화와 생활 터전의 동질성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는 측면에서 그 의의가 크다.

둘째, 중앙일보의 이번 답사가 남북한 당국간에 공식적 합의를 거쳐 이뤄졌다는 측면에서 앞으로 전개될 언론 및 문화 교류의 모델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사회.문화적 맥락, 즉 생활 세계의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고 있는 점에 비춰 중앙일보의 이번 기획은 생활 세계와 관련된 민간 차원의 각종 교류를 확대하는 데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 통일에서 보듯 신뢰할 수 있는 정보 공급자로서 서독 언론의 절제된 역할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가진 한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작업과 함께 남한이 가진 동질성도 확인해 북한에 전해줄 수 있는 동질성 확인의 상호 보완성을 생각해 보게 된다.

이민웅(한양대.신문방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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