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해법은 공교육 강화’ 일깨운 행정법원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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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울행정법원이 어제 “폭리 수준이 아닌 한 학원 수강료를 제한할 수 없다”며 현행 학원법이 헌법 원리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한마디로 정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이 사교육 억제보다는 공교육 강화 쪽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대전제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수강료 상한제 운영 방식은 정부 사교육 대책의 핵심적 정책 수단 중 하나였다. 학원들이 수강료를 올리려고 신고하면 교육 당국은 조정명령을 통해 물가인상률 수준에서 인상을 억제해왔다. 지난 수년간 수강료 인상이 제한되면서 건물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비싼 서울 강남 지역의 일부 학원이 신고한 수강료보다 많은 돈을 불법으로 받아온 게 사실이며 당국은 이를 근절하겠다고 학파라치 제도까지 도입하는 초강수를 뒀다.

아직 대법원 확정 판결을 남겨두고 있지만 이번 판결로 학원법의 조정명령 조항은 사실상 효력을 상실하게 될 전망이다. 강남권을 중심으로 학원들이 앞다퉈 수강료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도 근거가 있다. 정부로서는 사교육 대책의 강력한 수단 하나를 잃게 된 셈이다. 하지만 사교육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높다는 이유로 사교육 시장에 대해 비현실적인 규제를 가해온 것 자체가 사유재산권과 영업 활동의 자유라는 헌법의 기본원리를 제한하는 무리한 조치였다는 사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학원 영업시간 규제 역시 자녀 교육권 침해 등 이유로 헌법소원이 제기돼 있는 상태다. 이마저 위헌 판결이 날 경우 정부는 두 손 두 발 다 묶이고 사교육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더욱 날뛰는 최악의 사태까지 빚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규제로 문제를 푸는 건 한계가 있고 후유증을 남기기 마련이다. 누차 강조하지만 공교육을 강화해 사교육 수요 자체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가시적 효과를 보려는 조급함부터 버려야 한다. 당장 성과를 내기 위한 졸속대책은 혼선만 초래하고, 사교육계의 면역력만 강화해줄 뿐이며, 필연적으로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사교육을 없애려면 우선 사교육을 잊어야 한다. 대신 교원평가제나 방과후 학교 활성화 등 공교육의 내실을 기하는 정책에 진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