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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보물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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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소풍 가서 가장 기다리는 프로그램은 보물찾기였다. 보물을 찾아봐야 연필 몇 자루, 공책 몇 권 얻는 것인데도 가시에 찔리고 넘어지며 나무와 바위 틈새를 이 잡듯 뒤지고 다녔다. 서구의 부활절 ‘달걀 찾기(egg hunt)’도 분위기는 보물찾기와 흡사하다. 어른들의 보물찾기라고 다를 게 있을까.

미국 해양학자 로버트 발라드의 팀은 침몰한 호화유람선 타이타닉호의 몸통을 1985년 처음 찾아냈다. 이들은 유물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인양을 도굴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2년이 지나지 않아 벤처업체가 유물을 하나 둘 인양하기 시작한다. 영화 ‘타이타닉’(1997)도 인양 현장에서 출발한다. 탐사대가 궤짝 하나를 발견하고 기대에 부풀어 열어 보지만 그림만 나와 실망한다. 탐사선에 그림 속 여인이라는 할머니가 오르면서 역대 흥행 1위(19억 달러)의 영화는 항해를 시작한다. 선체 일부, 도자기나 요리기구 등의 일상 용구, 배의 건조·침몰·발굴의 드라마에도 사람을 끌어 모으는 마력이 있다는 게 확인된다. 타이타닉의 유물을 인양·관리하는 영국 RMS타이타닉사, 미국 나스닥에 등록한 모(母)기업 프리미어이그지비션스는 세계 곳곳에서 전시회를 열어 해마다 수천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타이타닉이 ‘콘텐트 보물선’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덤으로 해저 탐사, 유물 보존 처리 등의 값진 노하우마저 얻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금이 아쉬웠던 외환위기 직후 보물찾기 붐이 일었다. 투자 기업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보물의 저주’라는 말이 이래서 나왔나 싶을 정도로 뒤끝이 개운치 않았다. 대부분 자금사정이 나빠지거나 구설수에 휘말렸다.

국내 민간업체가 자금난으로 중단된 고승호의 발굴을 재개한다는 소식이다. 청일전쟁이 발발한 1894년 7월 25일 서해에서 일본군에 격침당한 영국 상선 ‘카우싱(Kowshing)’이 바로 고승호다. 발굴 추진자들은 이 배가 청나라 병사뿐 아니라 군자금으로 쓸 600t의 은을 싣고 있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러일전쟁 때 울릉도 부근에 수장됐다는 러시아 군함 돈스코이호 역시 다시 탐사가 추진된다고 한다. 100여 년 전 한반도를 놓고 일본과 청, 일본과 러시아가 겨룬 전쟁을 말해주는 유물이 나온다면 그 자체가 보물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금은보화를 찾아낸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허귀식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