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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화려한 몸짓에 물이 물들고, 내가 물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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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호 18면

물감으로 물 위에 수채화를 그리는 듯하다. 붉고 검은, 또는 황금색의 날씬한 비단잉어 떼가 말간 호수를 한가롭게 노닌다. 사람을 겁내지도 않는다. 인기척이 들리자 오히려 호숫가로 방향을 튼다. 충남 연기군 전동면의 베어트리파크. 이재연(79) 회장이 45년간 가꾸어 온 수목원으로 반달곰 등 희귀한 동물과 잘 키운 나무들의 보금자리다. 이 회장은 20년 전 일본에 건너가 비단잉어를 어렵사리 분양 받았다. 현재는 2000여 마리를 헤아린다.

베어트리파크에서 만난 비단잉어의 군무

별명이 붙은 녀석들도 많다.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머리피부 무늬를 닮았다고 해서 ‘고르비 홍백’, 미끈하게 잘생겼다고 ‘꽃미남’, 몸매가 낭창하고 황금색 빛깔이 아름답다고 ‘미스 황’….

비단잉어는 관상어의 왕자다. 자태도 우아하지만 색상이 화려하고 하나하나가 독특한 무늬를 가지고 있다. 환경 적응력이 높아 기르기도 쉽다. 먹이를 주기 위해 다가가는 주인 발소리를 알아들어 사람과 친하고, 먹이를 먹을 때도 싸우는 법이 없어 군자의 기품까지 갖추었다.

지금과 같은 화려한 무늬의 비단잉어는 돌연변이에 의해 생겨났다. 17세기 일본 니가타현의 양식장에서 우연히 머리에 주홍색 무늬가 있는 잉어가 발견됐다. 그전까지 관상용은 흰색과 검정색뿐이었다. 이 돌연변이를 교배시켜 홍·백·흑 3색이 조화된 비단잉어가 태어난 것이다. 종류는 흰 바탕에 붉은 무늬의 ‘홍백(작은 사진)’, 연한 색 바탕에 검은 무늬의 ‘별광’, 홍백에 검은 무늬가 추가된 ‘대정삼색’ 등이 있다.

하지만 완벽한 비단잉어 한 마리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명품의 조건은 몸의 유선형 형태, 선명한 색상, 균형 잡힌 무늬다. 어미로부터 치어를 얻어 끊임없이 고르고 버리는 과정을 계속해야 한다. 500만 마리 치어가 1차 감별에서 50만 마리로 줄어들고, 3차에서는 몇천 마리만 남는다. 수질과 온도, 먹이는 잉어의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5년 뒤 최종적으로 남는 것은 불과 4~5마리. 이 녀석들은 세계적인 품평회에도 나가고 애호가의 애를 태운다. 값은 물론 정해진 것이 없다.

녀석들이 노니는 호수에 슬쩍 카메라를 담가 봤다. 잠시 놀라는 듯했지만 도망을 가지는 않는다. 흔하게 볼 수는 없어도 비단잉어를 만나면 그들이 물속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일이다. 몸과 마음에 평화와 여유가 깃든다.

사진·글 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촬영 도움=장남원 수중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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