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실용] '나이키는 왜 짝퉁을 낳았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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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는 왜 짝퉁을 낳았을까
원제:Branded
앨리사 쿼트 지음, 유병규 외 옮김
한국경제신문, 280쪽, 1만2000원

한국사회에서 청소년이 상표(브랜드)에 눈 뜬 첫 물건은 운동화였다. 1980년대 중반에 수입된 나이키 운동화는 그걸 사 신을 수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 사이에 높은 벽 하나를 쌓았다. 별 것도 아닌 나이키 로고 하나가 몇 천원짜리 운동화를 몇 만원짜리 운동화로 둔갑시키는 자본주의의 상술은 놀라웠다.

나이키를 사려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마저 못하는 아이는 운동화에 나이키 로고를 그려넣으며 한을 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몸 안팎을 명품으로 휘감고 다니는 청소년이 수두룩하다.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보다 더 무서운 브랜드 중독이 10대의 한 특징이 되었다.

전문가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용돈을 소비하는 세대가 지금 10대라고 지적한다. 전세계 인구의 10%쯤을 차지하는 5억6000만명이 10대이고 그들이 쓰는 돈이 1년에 1000억달러에 달한다.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소비자군을 이룬 10대가 기업이 노리는 첫 공략 대상이 되는 까닭이다. 특히 13~18세를 가리키는 ‘트윈세대(tweens·10대를 가리키는 teens와 ‘사이에’를 뜻하는 tween의 합성어)’는 유아와 사춘기 청소년 사이에 끼어 있는 세대로 ‘브랜드화된 세상’에 익숙한 브랜드주의자다.

미국 주요 일간지의 칼럼니스트이자 자유기고가인 앨리사 쿼트는 스스로 11세 무렵부터 유명 브랜드를 인식하고 샀다고 돌아본다. 그런 자신의 체험을 바탕에 깔고 10대의 세계에 직접 뛰어들어 수많은 인터뷰와 현장 취재로 오늘날 청소년의 브랜드 중독을 차근차근 짚은 글은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10대의 인류학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쇼핑은 애국이다”라고 주장하며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저절로 알게 돼요. 텔레비전에서 보거든요”라고 털어놓는 13세 아이의 말처럼 ‘브랜드 인생’을 꿈꾸며 유명 상표의 물건 사기에 열중인 그들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브랜드 분석으로 보인다. 브랜드로 자신을 표현하는 10대에게 브랜드는 꿈이자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랜드 중독 현상을 비판하며 저항하는 10대의 움직임도 무시할 수 없다. ‘브랜드 반란’이다. 업자들의 상술로 미리 어른이 되어버린 한 소년은 말한다. “저는 학교에 공부하러 가는 것이지 기업이 요구하는 걸 배우러 가는 게 아닙니다. 저는 학대받는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유명 브랜드 상품은 입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브랜드 반란’ 뒤에는 어떤 흐름이 올까. 옮긴이는 ‘브랜드 유희’가 일어나지 않을까 내다본다. 명품을 베낀 ‘짝퉁’이 그 예다. 가짜 명품이 아니라 명품 상표가 놀이의 대상이 돼버렸다. 원 상표 이름을 패러디한‘BEAN GONE’‘PAMA’ ‘9RADA’ ‘9CCI’등이 보여주는 재기 넘치는 발랄함은 저절로 웃음이 나게 만든다. 10대는 브랜드에 모짝 빠지지 않고 이제 브랜드를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이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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