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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해운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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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22일 개봉한 영화 ‘해운대’는 쓰나미로 부산 해운대가 쑥대밭이 되는 가상 상황을 그린 영화다. 이런 영화에는 재해를 정확하게 예언하지만 무시당하는, 이른바 카산드라(Cassandra) 캐릭터가 반드시 등장한다. ‘해운대’에선 박중훈이 연기하는 김휘 박사가 줄곧 “일본 쓰시마 섬 앞바다에서 지진이 발생할 경우 해일은 10분 만에 부산 앞바다에 도착한다”며 대비를 촉구하지만, 피서철을 맞은 공무원들은 안 그래도 바쁘다며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한국 땅에 쓰나미가 밀어닥친다는 얘기는 얼핏 허황된 듯하지만 사실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다. 1983년 5월 27일자 중앙일보는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 여파로 강원도 동해안에 바닷물이 높아졌다 낮아지는 승강현상과 함께 파고 3m의 해일이 밀어닥쳐 3명이 실종되고, 74척의 선박이 침몰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지진 발생 지역은 홋카이도의 남쪽인 일본 서부 해상. 이 지진으로 일본은 100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쓰나미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있을 뿐, 해저 지진으로 인한 해일과 수면 승강 현상은 바로 쓰나미를 가리킨다.

93년 7월 12일에도 역시 홋카이도 남서쪽 해상에서 발생한 해저 지진으로 동해안에 해일이 발생, 57척의 어선이 파손됐다. 이 해 7월 20일자에는 당시 서울대 오임상 교수가 “일본 근해에서 해일이 발생할 경우 2~3시간이면 우리나라에 도달할 수 있으므로 해저 지진이 있을 경우 즉각 대비 태세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이 실려 있다. 영화 속 김휘 교수의 주장도 그리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었던 셈이다.

사실 피서객의 입장에서 오늘날 해운대를 볼 때 가장 걱정되는 것은 언제 올지 모르는 쓰나미보다는 백사장의 침식이다. 80년대 이후 해안의 무분별한 개발 결과 백사장의 길이가 날로 짧아져 해마다 여름이면 몇만t씩 모래를 보충한다는 기사가 눈길을 끈다. 침식 때문에 해안선에서 멀어질수록 급격하게 수면이 깊어지는 협곡화 현상까지 발생했다고도 한다. 다양한 백사장 보호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별 뾰족한 수는 없는 모양이다.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이 자신의 호 고운(孤雲)에서 한 글자를 떼어 이름을 붙였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피서지 해운대. 글자대로 바다와 구름만 남고 해수욕장은 사라지는 비운을 맞는다면 그거야말로 대재앙이 아닐 수 없다.

송원섭 JES 콘텐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