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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386세대 '칼의 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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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386 정권이 탄생할 때 마음을 다잡지 않아서인지 386이 부르는 '칼의 노래'가 자못 서늘하다. 이 삼복더위에 간담이 서늘하다면 좋으련만 어딘지 논리의 이음매를 끊고 말문을 막으려는 듯 밀려오는 게 편치 않다. 집권층이 기득권이라고 말할 때 새어 나오는 한 서림이 역사 정통성을 틀어쥐었다는 승전가로 울려지고, 날선 칼 끝이 겨냥하는 게 상처투성이의 근현대사여서 더욱 그렇다. 동학혁명으로 시작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막을 내린 우리의 20세기, 그러나 어쨌든 변방에서 탈출한 세계 유일의 경력과 고충을 고스란히 품은 현대사를 눈물겹게 관조하는 노래가 아니라 시비를 가려 목을 베는 '피의 노래'인 듯해서 그렇다. 조선시대 최고의 형벌은 사체 시해였다.

*** "남은 선택은 망명.자살.친일뿐"

동학 희생자의 명예 회복과 친일을 규명한다는 데 누가 감히 반대논리를 설파할 수 있으랴? 그럼에도 가위눌리는 듯한 느낌은 왜일까? 우선 한껏 구부러진 역사를 펴기에는 너무 늦었고, 그 대상은 너무 멀리 있다. 1894년 우금치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고조부를 찾아낸들 '가문의 영광'외에 더 무엇이 있으며, 증조부가 생래적 친일파였음을 국가가 확인한들 그 수치를 어찌 감당하고 속죄하며 살 것인가? 판.검사는 물론 면장.소위.형사 직위로 친일 범위를 넓힌다면 일제 하 모든 조선인 관료가 심판대에 오른다. 그들에게 혐의를 씌우기 전에 서슬 퍼렇던 일제통치에서 그나마 조선인을 위한 협소한 공적 공간이 어떻게 트였던가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

더 곤혹스러운 것은 개별 경력의 종합 판정 문제다. 거물급 친일 인사들도 초기에는 민족운동에 헌신했다. 독립협회와 대한자강회 회장을 맡았던 윤치호는 1912년 '105인 사건'으로 발목이 잡혔고,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최남선.최린과 조선의 문호 이광수는 20년대 중반에 변절했다. 창씨개명으로 '속앓이하는' 서민보다 이들의 죄는 중차대하다. 언론.교육.산업에 매진했던 김성수는 37년 중.일전쟁 이후 친일의 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49년 반민특위의 김성수 재판은 민족운동을 위한 공(功)과 친일의 과(過)가 서로 상쇄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천도교의 거물 최린은 반민특위 재판정에서 침통하게 답했다. 무단통치 하에서 남은 선택지는 망명.자살.친일이었다고. 이들에 비하면 치어(穉魚)에 불과한 일본군 소위 박정희는 해방 직후인 45년 8월 말 광복군에 합류했다. 당시 광복군 중위였던 장준하로부터 통렬한 비판을 들으면서 군복을 갈아입었다. 박정희의 원죄는 오히려 민주투사들을 지옥으로 보낸 데 있다.

친일 판정은 학문적 과제이기에 정치가 끼어들면 난처해진다. 더욱이 36년의 일제 강점기는 불과 5년 남짓한 나치 치하 프랑스와는 본질적으로 다르고, 국내 인사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총독부의 감시대상이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무단통치로 악명을 떨친 미나미 총독 하에서 동아일보는 손기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떼냈다. 그런데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일환으로 일어 전용과 창씨개명이 강요되는 상황에서 신문사에 남겨진 선택지는 무엇이었을까? 독립군의 승전보를 한 줄이라도 실으려고 천황 찬양을 머리기사로 올렸을지 모른다. 아니면 거꾸로 일 수도 있다. 41년 일본어로 신문을 발행하라는 총독부의 최후통첩 앞에서 '조선'과 '동아'는 5년의 친일 행보를 마감해야 했다. 자결, 즉 자진 폐간을 선택한 것이다. '5년의 친일'을 부각하면 16년간 연명했던 민족지의 고난은 영원히 사장된다.

*** 친일 판정, 정치 개입하면 곤란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일제의 폭압적 통치를 별도로 두고 개인과 기관의 경력을 토막내어 단죄하는 것은 역사를 공멸의 늪으로 끌고 간다. 386의 '칼의 노래'는 역사의 상처를 위무하는 진혼곡인가? 독립군의 딸과 독재자의 딸이 삿대질하며 끝장을 보자는 게 그들의 선조가 진정 원했던 것인가? 민주투쟁 20년의 경력으로, 순도 100%의 보증서를 품에 안고 스스로 정의로워 비장해진 표정으로 이순신의 마지막 바다 노량에 친일의 목을 한없이 수장시킨들 역사가 순정품으로 표백될 것인가? 돌을 던지려면 지극히 신중해야 한다. 역사의 한 귀퉁이를 보수(補修)하려는 정치도 결국은 역사적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환기하고 싶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