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퀄컴에 2600억 과징금 부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세계적 정보기술(IT)업체인 미국 퀄컴이 자사 제품을 강요하는 등의 불공정 거래 혐의로 국내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3일 퀄컴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과징금 2600억원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퀄컴은 2004년 이후 이동통신 핵심기술(CDMA, 코드분할다중접속)을 삼성전자·LG전자·팬택 등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에 제공하면서 경쟁사의 제품을 쓰는 업체에 대해 차별적으로 높은 로열티를 부과했다. 또 2000년 이후 퀄컴 제품을 많이 쓰는 조건으로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에게 분기 평균 420만~820만 달러씩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도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미국 퀄컴에 부과한 과징금 2600억원은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다. 국내외 기업을 망라해 역대 최대 규모다. 이전에 과징금이 가장 많았던 사건은 2005년 KT·하나로텔레콤에 부과한 1130억원(이후 967억원으로 재산정)이었다.

공정위가 다국적 IT 업체에 제재를 가한 것은 2005년 마이크로소프트(과징금 325억원), 2008년 인텔(260억원)에 이어 세 번째다. 당초 업계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의 전례를 감안해 퀄컴에 대해선 300억~400억원을 물릴 것으로 예상했었다. 이번 공정위의 결정이 비슷한 사안을 조사 중인 미국·유럽연합(EU) 등의 퀄컴 제재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 서동원 부위원장은 “이번 조치로 국내 휴대전화 부품시장에서 그간 퀄컴의 불공정 행위로 봉쇄됐던 신규 사업자의 진입이 활발해질 전망”이라며 “가격 경쟁이 촉진되면서 소비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법적 영업 관행에 철퇴=2006년 2월부터 퀄컴 조사에 착수한 공정위는 3년이 지난 올 2월에야 제재 여부를 전원회의에 상정했다. 그만큼 사건이 복잡해 높은 수준의 법리 검토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퀄컴은 휴대전화 원천기술인 CDMA를 보유한 회사로, 삼성전자·LG전자·팬택 등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에 제공해 왔다. 1995년 이후 이들 제조업체들로부터 거둬들인 로열티만 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과정에서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퀄컴의 부품을 사용하면 휴대전화 판매가의 5%의 로열티를 부과하고, 경쟁사의 제품을 쓰면 5.75%를 적용하는 식으로 경쟁사의 진입을 막았다. 로열티 상한도 퀄컴 부품을 사용하면 휴대전화 대당 20달러, 경쟁사 부품을 함께 쓰는 곳은 30달러로 설정했다.

또 휴대전화 제조업체에 퀄컴 부품을 구매하는 조건으로 2000년부터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부품 수요량의 85% 이상을 구매하면 구매액의 3%를 지급하는 식으로 2004년까지는 업체당 분기 평균 420만 달러, 그 이후에는 820만 달러를 리베이트로 줬다. 이 밖에 특허권의 효력이 없어진 이후에도 기존 기술 로열티의 50%를 계속 받도록 계약을 해 국내 업체들의 로열티 부담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퀄컴의 부품 끼워팔기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했으나, 추가 조사가 필요해 결정을 유보했다.

공정위 한철수 시장감시국장은 “퀄컴의 불공정 행위 때문에 대만의 비아(VIA), 우리나라의 이오넥스(EoNex) 등의 업체가 시장 진출에 제약을 받아 왔다”고 설명했다.

◆퀄컴 경영 타격 불가피=이번 공정위의 판결은 세계 IT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퀄컴에 대한 제재가 전 세계에서 처음이기 때문이다. 향후 다른 나라에서도 참고할 선례가 될 수 있다.

퀄컴은 항소의 뜻을 밝히며 반발하고 있다. 퀄컴의 국내시장 연매출은 4조8000억원 정도로 이번 과징금은 매출의 5%를 넘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퀄컴의 최대 수익처가 한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업 방식과 수익 기반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