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단지 입주해약 '봇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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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전국의 국가 및 지방 산업단지에 입주를 신청했던 기업들의 해약사태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많은 돈을 들여 만든 공단들이 무주공산 (無主空山) 으로 전락할 우려를 낳고 있다.

산업자원부의 집계에 따르면 국가공단의 해약 요청은 53개 업체, 6천억원 규모에 달한다. 지방공단에서도 기업들의 해약 요구가 잇따르고 있어 공단자체가 고사위기에 빠진 곳이 많다.

◇ 실태 = 전북 군장 국가산업단지 (총 4백82만평) 내 46만여평을 분양계약, 이미 1백44억원을 낸 LG가 올들어 "위약금 (1백40여억원) 을 물 테니 해약하자" 며 토공측을 조르고 있다.

전주3공단에서도 대림.모나미가 4만여평을, 익산2공단에는 현대정공이 3만여 평을 해약했다.

정읍시가 중소기업 특별지원지역으로 조성한 2.3산업단지에서는 47개 업체가 19만2천 평의 분양계약을 해지했다.

특히 전주과학산업단지는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 이후 분양을 시작, 산업.연구 용지 57만여 평중 지금까지 단 한평도 분양이 안됐다.

경기도평택 포승지구와 충남당진 고대.부곡지구 등으로 이뤄진 아산만 국가산업단지의 경우도 분양받은 업체의 30%가량이 해약을 요청했다.

포승지구의 인천제철 (18만평 분양) 과 제일제당 (7만평) , 부곡지구의 LG반도체.전선 (26만.20만평) 등 대기업도 포함되어 있다.

대전 제4공단의 경우도 7만평을 분양받고 3백50억원을 납부한 LG반도체가 해약을 요구하고 있다.

경북경산시 자인공단에서도 96년 8월 공장용지로 3천여평을 14억원에 계약한 기계금속업체 삼영공업 (대표 김효봉) 은 이미 낸 계약금 4천8백만원을 날린 채 지난1월 해약하는 등 6~7개사가 올들어 해약했다.

울산 온산공단에서는 한화종합화학이 10만평을 지난 88년 분양받고 분양금 (1백14억원) 을 완납한 상태에서 올1월 위약금 (분양금 10%) 을 물고 계약을 해지했다.

경기도의 경우는 사정이 나은 편. 교통이 편리하고 입지조건이 좋은 탓에 올들어 분양해약사례는 안성시 덕산공단내 7천평을 2억3천만원에 분양받았던 자동차부품업체 성신인터내셔널㈜이 지난5월 위약금 1천3백만원을 물고 해약한 것 1건뿐이다.

◇ 원인 = 산업단지의 해약이 이처럼 줄을 잇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자금압박을 받는 기업들이 공장 신.증설등 신규투자를 기피하고 있기 때문. 여기에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공단분양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대기업들이 투자를 전면 재조정하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요인이다.

현대전자의 반도체부문과 공동회사를 만드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추진중인 LG반도체가 아산만국가공단, 대전4공단등에 분양받았던 공장용지를 최근 해약요청한 것이 이런 사례다.

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수도권지역 공장 신.증설 완화도 지방공단의 입주해약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이같은 정부방침이 흘러나오면서 대기업인 S전자가 세탁기공장의 광주이전을 추진하다 백지화시킨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정읍공단에 입주키로 했던 관련부품업체 10개사도 덩달아 계약을 파기하기도 했다.

◇ 대책 및 전문가의견 = 공단의 특성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 정읍시 김영국 (金寧國) 지역경제과장은 "그동안 산업단지가 대부분 잡화점식으로 운영되어 경쟁력이 떨어졌다" 며 "유사업종을 집약적으로 모아 연구.지원센터를 함께 건립하고 공동브랜드까지 개발하면 경비도 절감되고 상승효과가 커질 것" 이라고 말했다.

또 개발방식도 지금까지처럼 일괄 개발, 일괄 분양을 벗어나 분양 규모나 입지.가격 등을 수요자 입장이나 주문을 받아 개발하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단의 인프라시설 확충도 분양을 촉진하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다.

한편 경북도는 업계 지원용으로 마련한 자금 6백억원중 일부를 도내 공단의 분양해약 방지기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송의호.정재헌.이석봉.장대석.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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