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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일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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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지구를 포도송이만 한 크기의 구체로 가정하자. 달은 그로부터 약 30㎝ 떨어진 머루다. 태양은 사람 키만 한 크기로 약 50m 떨어져 있고, 200m 지점에는 멜론 크기만 한 목성이 있다. 천왕성과 해왕성은 레몬의 크기로 1㎞와 1.5㎞ 정도 떨어져 있다.

해의 지름은 달의 400배, 지구~태양의 거리는 지구~달 거리의 400배다. 지구에서 달과 해의 크기가 비슷하게 보이는 이유다. 태양을 공전하는 지구, 지구를 공전하는 달이 태양-달-지구의 순서로 서게 되면 달이 해의 일부 또는 전부를 가리는 일식 현상이 벌어진다. 태양을 가린 달의 그림자가 22일 지구촌 일부에 드리우면서 약 30억의 인구가 이 화려한 우주쇼의 장관을 지켜봤다.

달과 지구의 실제 평균거리는 38만㎞. 외국으로 갈 때 타는 국제선 여객기의 평균고도가 10㎞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거리가 얼마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지구로부터 가장 가까운 천체라는 점에서 달은 늘 인류의 탐구 대상이었다. 올해는 특히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도착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다.

대한민국은 달이 상징하는 ‘우주’에 관해서는 지각생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물론, 이웃인 중국과 일본·인도 등이 모두 달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태도를 보면 더 그렇다.

지구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그랬다.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이 둥근 공 모양의 형태라는 사실에 입각해 만든 단어가 지구(地球)다. 이 말은 선교를 위해 중국에 살았던 이탈리아인 마테오 리치가 1605년 『건곤체의(乾坤體義)』라는 책에서 자세히 언급했다.

그러나 한반도 지식계의 반응은 퍽 늦었다. 항성인 태양의 주위를 행성인 지구가 돌고 있다는 식의 체계적 관점에서 지구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최한기(1803~1877)다. 그가 1857년에 지은 『지구전요(地球典要)』에 이 개념이 등장한다. 마테오 리치의 저술로부터 250여 년이 지난 시점이다.

화려한 우주쇼가 펼쳐진 22일의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거친 싸움이 벌어졌다. 세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일부 정치인들이 벌이고 있는 ‘평면 집착형’ 자세 때문이다. 남들이 향하는 무한대의 입체적 우주 세계는 우리 정치권에서는 아직 먼 이야기다. 여의도는 초고도 중력(重力) 작용 지대인가 보다. 많은 의원들의 시야가 평면에만 머물고 있으니.

유광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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