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놀며 말하며]웃기는 친구 '김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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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침이슬의 김민기 (저는 평소 '김밍기' 라 부릅니다만) , 저항가수 김민기, 요즘 난국타개용 공익광고 노래 '상록수' 의 작곡자 김민기 하면 괜히 심각비장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친구인 제 입장에서 보면 김민기는 그저 웃기는 친구중의 한명입니다.버젓이 서울미대를 다니다가 가수가 된 것도 웃기는 일이고 종내는 뮤지컬 연출자가 된 것도 그렇습니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서 제 옆구리를 찔러 결국 저를 가수 겸 얼치기 화가로 만든 것도 그가 나를 웃긴 일입니다.

제가 군대생활할 때 가끔씩 서울미대 캠퍼스로 찾아가 거기 학생들이 그려놓은 그림들을 보고 "야! 내가 발가락으로 그려도 저 정도는 그리겠다" 하자 "덩더꿍! 그럼 형이 화가하쇼" 한 게 바로 제 미술입문의 동기니까요. 그때부터 음대생인 저는 하루종일 그림을 그리고 미대생인 김민기는 온종일 기타만 퉁겨댔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25년전 저의 첫 전시회를 그자가 주선해 주고 전시 초대장 머릿말도 그자가 손수 써댄 것도 웃기는 일입니다.

그 무렵부터 저한테는 또하나 웃기는 습관이 붙었습니다.

그건 쌍방이 눈만 마주치면 제가 양껏 술을 사주는 버릇 말입니다.

그는 술하고 자손만대에 '웬수' 를 진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술을 퍼마셨습니다.만나기만 하면 "술 좀 고만 마셔라" 라고 외치다가 어느날 "그대 어차피 술로 망할 요량이면 죽은 뒤 후회말자" 며 무조건 술을 양껏 사주기로 결의를 한 것도 웃깁니다.

그런 일이 어디 한두가집니까. 제가 미국에 장기체류 중이었는데 군사정권하에서 김민기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감옥에 갔다더라 행방불명됐다더라 죽었다더라 등등. 그래서 저는 잠시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노래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게 '김군에 관한 추억' 이라는 노랩니다.

괜찮은 친구가 세상풍파에 밀려 아침이슬처럼 사라져 갔다는 내용의 노랫말을 담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보니 녀석이 멀쩡히 살아있는 겁니다.

그러니 제가 만든 '추억의 노래' 는 계속 썩어만 갔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그를 만나면 저는 담박에 "야!

니가 빨리 죽어야 내가 판 만들어 팔아먹을 것 아니냐" 며 아우성을 친답니다.

사실 데모는커녕 눈 한번 부릅 뜰 줄도 모르던 그가 무슨 저항가수로 알려진 것부터 포복절도할 일입니다.

지난 주말 그가 운영하는 동숭동 '학전' 에 들렀을 때 그는 반바지 차림으로 새 뮤지컬 '의형제' 의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었습니다.

제가 먼저 "야! 니가 만든 상록수 노래 요즘 공익광고로 막 뜨더라" 하니까 금세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 겁니다.

알고 보니 정부에서는 노래를 차용하면서 작곡자한테는 연락 한번 없이 저작료 지불로만 끝낸 모양이었습니다.

사전에 전화 한통만 했으면 더 완성미 있는 노래를 빼줄 수 있었는데 그게 못내 서운했던 겁니다.

그러나 정부의 담당자 여러분! 염려 놓으십시오. 제가 대작곡가 김민기한테 소주를 또 한병 샀습니다. 그래서 곧 헬렐레해졌습니다.

알아두십시오 한국광대의 특징은 여리고 여립니다.

[조영남 방송인.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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