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 미사일'탄착점은 이회창?…공세 고삐죄는 여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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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권의 사정 (司正) 칼날이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총재쪽으로 옮겨지고 있다.

국민회의는 3일 "이회창 총재의 국세청.안기부를 동원한 불법자금 모금사건 개입 의혹을 밝혀야 한다" 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동영 (鄭東泳) 대변인은 "李총재가 이 사실을 몰랐다면 '몰랐었다' 고 공식 확인하든가, 알았다면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라" 고 원색적으로 몰아쳤다.

여권이 이런 초강경으로 자세를 전환한 데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강한 사정의지가 전달됐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회창 총재가 국가기관을 동원한 자금모집 사건에 개입됐다면 李총재는 단순히 사정 차원에서 법적 처리 대상이 아니라 정치권 개혁차원에서 인적 (人的) 청산의 대상" 이라고까지 규정했다.

李총재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가려는 인상마저 주는 대목이다.

李총재가 서상목 (徐相穆)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앉히고 이신행 (李信行) 의원이 2일 국회 신상발언을 통해 金대통령 대선자금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등 李총재측의 저항방식도 여권 강경대응의 배경이 됐다고 한다.

어찌됐든 상당한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번 사태를 '정치권 정화' 의 계기로 몰고 가겠다는 게 청와대의 생각이다.

즉 거론되는 비리연루설 의원들을 경중에 따라 사법처리할 사람은 사법처리하고, 정치적으로 퇴출시킬 사람은 퇴출시키겠다는 의지다.

사실관계를 분명히 해 여론의 압박을 끊임없이 받게하는 것도 金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상 예상될 수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이회창 총재를 어느 선까지 몰아붙일 것인가도 주목되는 대목. 여권 핵심들은 한결같이 李총재 본인의 공개 해명까지만 요구하고 있다.

검찰조사 운운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李총재가 정치생활을 계속하는 한 그에게 '공권력을 동원해 정치자금을 모은 정치인' 이라는 멍에가 따라 다니지 않겠느냐" 고 주장했다.

金대통령의 '이회창 다루기' 의 한 방식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거대야당 이회창 총재를 흔드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국정운영에서 李총재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 내년초 내각제 개헌론이 부상되면 대통령제 고수론자인 그의 역할을 활용해야 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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