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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여의도 정치가 KT 노조에서 배워야 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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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KT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그 자체로 노동계의 일대 사건이다. 조합원 95%가 찬성했다. 1년 조합비 8억원을 내는 조직 노동자 2만8000명 그룹이 민주노총에서 뭉텅이로 빠져나갔다. 운동 안 하는 중·노년에게서 어느 순간 허벅지나 장딴지 근육이 쑥 빠져나가 절뚝거리게 되는 현상 같다고나 할까.

KT 노조 허진(49) 교육선전실장의 탈퇴 발언엔 소박하지만 시원한 메시지가 들어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했다.

“조합원들이 정치파업과 정파싸움에 지쳤다. 민주노총식 투쟁방법은 더 이상 대중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이념적인 투쟁을 위해 노조를 동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쌍용차 같은 특정 사업장 파업을 노동계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를 가보면 폭력상황만 발생할 뿐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모습을 못 봤다. 반대표를 매도하진 않겠으나 다수 찬성표의 뜻에 따라야 한다.”

허 실장의 말에 나라의 골칫덩어리인 여의도 정치권도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그의 발언엔 네 가지 피해야 할 것과 한 가지 지켜야 할 것이 녹아있다. 피해야 할 네 가지는 ①과잉 정치화 ②부분과 전체의 혼돈 ③목적과 수단의 전도 ④폭력의 일상화다. 지켜야 할 한 가지는 ‘다수는 소수를 존중하고, 소수는 다수를 따른다’는 원칙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1주일째 폭우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던 18일 주말에도 국회에 모여 ‘격투기 준비’에 골몰했다. 한나라당은 미디어산업발전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민주당은 저지하기 위해서다. 본회의장엔 상대당의 국회의장석 점거 저지를 위한 감시조가 3인씩 배치됐다. 오후 2시 현재 한나라당은 손범규·신지호·안효대(24시간 교대조) 의원이, 민주당은 오제세·신학용·문학진 (8시간 교대조)의원이 감시조원으로 활약했다. 감시조원 가운데 한 의원은 스스로 민망하고 부끄러웠던지 “당의 배치계획에 따라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나왔을 뿐”이라고 멋쩍어했다.

미디어산업발전법은 야당이 주장하듯 ‘어느 정도 정치성’은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이 부분이 한 나라의 국회를 8개월 동안 온갖 몸싸움과 입법파업으로 작동불능에 빠지게 하고, 국회의원을 장기판의 말들로 타락하게 할 만큼 큰일은 아니다. 야당의 입장을 감안해 준다 해도 민주당은 ‘과잉 정치화’와 ‘부분을 전체와 혼돈하는 오류’에 빠져 있다. 더구나 소속 의원을 헌법기관으로서가 아니라 무슨 극단주의 운동권처럼 수단으로 취급하는 사고방식에 빠진 게 아닌가. 사소한 일도 금세 최고 수준으로 정치화하고, 부분을 전체처럼 부풀리며, 목적을 위해 어떤 수단도 정당화되는 환경에선 폭력마저 미화되곤 한다. 정치하는 사람들, 특히 한나라당과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KT 노조 간부 허진씨의 말을 새겨보길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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