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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읽기 BOOK] 처세술로 풀어보니 장비는 죽을 만했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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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왼손에는 사기 오른손에는 삼국지를 들어라
밍더 지음
홍순도 옮김, 더숲
643쪽, 2만2000원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더불어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속설이 있다. 책에 실린 처세술과 계책을 충분히 익혔을 테니 감당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중국뿐 아니라 동양의 대표적 사서인 사기, 특히 열전도 비슷한 대접을 받는다. 3000년 간 명멸해간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행적을 기록한 열전은 말 그대로 처세의 교본이라 할 만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두 고전에 등장하는 인물과 예화를 의리·탐욕에서 진퇴· 신의까지 17편으로 나눠 교훈을 전한다. 이런 유의 책은 재료가 동일하니 결국 성패는 엮은이의 ‘선구안’과 입담에 달린 셈인데 일단 믿음직하다.

예를 들면 의형 관우의 복수를 위해 부하를 닦달하다 살해당한 장비에 대해 처세의 실패에 따른 필연적 죽음이었다고 풀이하는 대목이 그렇다. 제갈량을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이는 유비에게 “만약 오지 않는다면 포승줄로 묶어서라도 끌고 오겠다”고 폭언을 했던 일 등이 그 근거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상호존중이 원칙인데 이를 무시했으니 죽을 만했다며.

독특한 시각만이 이 책의 미덕은 아니다. 다른 옛글을 더해 읽는 맛을 더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한나라 개국 후 승승장구하던 명신 진평은 유방의 아내였던 여후(呂后)가 득세하자 술에 빠져 지내며 예봉을 피한 후 여후가 세상을 뜬 뒤 반정(反正)에 성공한다. 이 일화를 전하면서 지은이는 “살다 보면 공평하지 못한 일을 수없이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불만을 얼굴에 나타내다간 곳곳에서 벽에 부딪쳐 원칙과 정의마저 지키지 못하게 된다”고 일러준다. 여기에 “성인의 도는 은(隱·감춤)과 익(匿·숨김)에 있다”는 옛말을 더하는 식이다. 이같은 지은이의 솜씨가, 두 고전을 물리적으로 합치는 데 그쳤다는 아쉬움을 이겨내게 하는 책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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