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의 그린수기]41.나를 채찍질한'아버지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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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요즘 내가 가장 가슴 아파하는 일이 있다.

바로 우리 아버지에 대한 시선이다. 내가 2주전 브리티시여자오픈에 참가했을 때 한 영국 신문은 아버지의 전력을 거론하며 나를 '갱의 딸' 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때는 너무너무 속이 상해 골프채를 잡기가 싫을 정도였다.

아버지의 과거가 어떻든 또 사람들이 뭐라고 손가락질한다고 해도 내게 가장 소중하고 존경하는 분은 바로 아버지다.

아버지는 원래 눈물이 없는 분이다.

그런 아버지가 나 때문에 여러 번 우셨다.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신 것은 두 번 정도로 기억된다.

한번은 언젠가 얘기한 듯한데 지난 94년 한국의 톰보이여자오픈에서 예선탈락한 나를 심하게 야단치고는 내가 울음을 터뜨리자 아버지도 울고 말았던 적이 있다.

두번째는 지난 95년 대구골프장에서 열렸던 송암배 아마추어선수권대회 때였다.

내가 우승을 했는데 아버지와 나는 시상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승컵을 들고 도망을 쳤다.

남들처럼 우승 턱을 낼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버지 주머니엔 고작 5만원이 있었다.

그야말로 집으로 돌아갈 기름값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우승을 하면 선물도 쭉 돌리고 대회 관계자들에게 식사도 대접하며 우승을 만끽할 아버지 성격인데 당시는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한턱 내라" 는 말이 나오기 전에 나를 데리고 줄행랑을 쳤던 것이다.

비가 주룩주룩 내린 날이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축하인사를 받고 있는데 아버지가 손짓을 했다.

"빨리 가자" 는 표시였다.

아버지와 나는 클럽하우스 뒷문으로 살짝 빠져나와 차가 있는 곳까지 몰래 뛰었다.

옷은 완전히 젖어버렸다 아버지는 정말 넋나간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빗속에서 우승컵을 안고 도망치는 신세가 처량해 보였나 보다.

아버지는 그때 정말 속상해하셨다.

"내 딸이 우승을 했는데 이렇게 도망을 쳐야 하다니, 참…. " 이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시더니 차를 세우고 눈물을 닦았다.

그때의 아버지 모습은 정말 안쓰러워보였다.

나는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앞으로 아버지가 돈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하는 일은 없을 것" 이라고. 나는 아버지의 눈물을 언제나 마음에 두고 있다.

나태해질 때마다 나를 채찍질하는 것이 아버지의 눈물이다.

아버지에 대한 소원이 있다.

허리 병이 도지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지금껏 한 번도 앓아 누운 적이 없는데 아버지가 대신 병치레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아버지는 내가 우승할 것 같은 조짐이 보이면 몸이 아프다고 한다.

허리가 가장 심하지만 어깨도, 무릎도 쑤시고 아프다고 한다.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딸 대신 몸살을 앓아주는 것" 이라고 몇몇 무속인들이 한결같이 지적했다고 한다.

뭔가 통하는 사람끼리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는 앞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실 것이다.

지금도 수해 복구작업에 자원봉사자로 참석하느라 무척 바쁘시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를 과거의 박준철이 아닌 현재의 박준철로 보아주었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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