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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노동사, 신여성 다룬 책 동시에 펴낸 김경일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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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근대 노동운동사와 1920년대 신여성의 등장 문제를 다룬 두 권의 저서를 한 사회학자가 동시에 펴냈다. '한국 근대 노동사와 노동운동'(문학과지성사)과 '여성의 근대, 근대의 여성'(푸른역사)이 그것이다. 저자는 김경일(48.한국정신문화연구원 사회학.사진) 교수.

두 책에는 식민지 시기의 근대 사회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딱딱한 거대담론과 말랑말랑한 미시담론이 공존하고 있어 이례적이다. 김 교수는 "1970년대 후반부터 성장해온 사회과학도이기 때문에 국가나 권력.민족.계급 같은 거대담론에 익숙하다. 신여성이란 주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약간의 쑥스러움이 없지 않으나, 역사적 맥락을 중시할 경우 기존의 탈근대론자들의 연구와는 또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다음은 최근 학계 연구 동향의 변화를 상징하는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이질적 연구를 함께한 배경은 무엇인가.

"본래 전공은 한국 근대 노동사였다. 우리 세대에서 노동 문제는 연구 소재로서는 주류였다. 90년대 들어 냉전이 해체되면서 학계의 연구 경향도 바뀌어 갔다. 특정 이념의 틀에 맞추는 경향은 줄고 연구자 개인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방향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개인적으로 두 책이 갖는 의미는.

"'한국 근대 노동사와 노동운동'은 노동 문제와 관련한 나의 연구를 일단락하는 것이다. 앞으로 여성.가족 문제 같은 구체적인 소재를 선택해 한국의 근대성 문제를 동아시아적 차원에서 다뤄 볼 생각이다. '여성의 근대, 근대의 여성'은 그 첫 저작이다."

-김 교수의 사례를 인문사회학계 변화의 한 흐름으로 볼 수 있을까.

"시대적 중압에서 해방됐다. 연구자마다 각자의 분야에서 미시적으로 현실의 다양성을 보여주며 각개약진하는 흐름일 것이다."

-'근대성' '신여성' 같은 주제는 이른바 탈근대론자들이 주로 거론하는 것 아닌가.

"'근대성'이란 주제는 탈근대론자들이 서구에서 수입해 유행시켰다. 근대성 문제에는 근대화의 성과와 폐해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탈근대론자들은 신여성 문제를 다루더라도 역사적 맥락을 떠나 소재주의에 치우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신여성의 역사적 의미와 한계는 무엇인가.

"1920년대 출현한 신여성들은 남녀평등과 개인의 자유를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식민지 사회에서 신여성은 소수였고 고립돼 있었다. 이 때문에 나혜석이나 윤심덕 등 대부분의 신여성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그들의 주장은 조롱 속에 무시됐다. 그들이 받은 억압과 배제가 오늘날엔 얼마나 달라졌는지 앞으로 생각해 볼 문제다. 오늘의 페미니즘도 힘을 받을 것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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