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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단은 식물원 … 담장은 갤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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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소도시 라가시의 한 건물 외벽에 사진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라가시=전진배 특파원]

8일 오후 프랑스 파리에서 서쪽으로 400㎞쯤 떨어진 브르타뉴 지방의 라가시 시(市). 프랑스의 여느 시골과 다를 바 없는 곳인데도 사람들로 붐볐다. 외국인 관광객도 적지 않아 영어와 독일어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지난달 시작된 ‘사람과 자연’ 사진 전시회를 보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으로 시내 음식점에는 빈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카페에서 일하는 쥘리 아모프(24·여)는 “사진 전시회가 열리는 요즘은 관광객이 워낙 많아 밤늦게까지 문을 연다”고 말했다. 사진 작가들이 아프리카 등을 돌며 찍은 자연의 모습은 갤러리뿐 아니라 마을 곳곳에 붙어 있었다. 카페와 가정집 외벽, 계곡에도 사진이 걸렸다. 도시 전체가 자연 박물관이자 전시회장 같았다.

◆친환경 컨셉트가 주변 3개 도시 먹여 살려=라가시는 40년 전만 해도 전형적인 가난한 농촌 도시였다. 농사가 주업인데, 날씨가 좋지 않아 값싼 옥수수 등을 재배하는 게 고작이었다. 어려운 환경에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1950년대에 1200여 명이던 인구는 60년대로 접어들면서 1000명 이하로 줄었다. 쇠락하던 라가시는 친환경 화장품 회사인 이브로셰가 기업 활동 근거지로 삼으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59년 설립된 이브로셰는 70년대부터 매출이 크게 늘면서 라가시 인근에 공장을 세 곳 지었다. 그 결과 라가시 인구는 30년 동안 세 배 늘어 2500명을 웃돌게 됐다. 식물 연구가·공장 노동자·조경 전문가·운송업자 등 직원이 1500명이나 필요하게 되면서 외부 유입이 많아진 것이다.

특히 이브로셰의 창업자인 이브 로셰 회장이 시장으로 선출된 뒤 도시 전체가 친환경 공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로셰 시장은 화장품 제조에 필요한 식물 재료를 공급하기 위해 마을에 정원을 가꿨다. 처음에는 화장품에 주로 사용하는 20여 종을 심었지만 점차 규모를 키워 지금은 1100종에 면적이 45만㎡에 달한다. 정원에 들어가보니 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식물 연구원이 정원을 돌면서 “대나무는 피부를 매끄럽게 해 샤워젤을 만들고 애기똥풀은 안면 홍조를 없애 주기 때문에 얼굴 크림에 넣는다”고 설명하자 여성 관광객들이 관심을 보였다.

‘자연 친화 마을’이란 이미지가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요즘처럼 사진 전시회가 열리는 기간에는 6∼7월에만 1만5000여 명이 찾아오는 등 매년 관광객이 6만 명을 넘는다. 도시 인구의 25배에 달하는 규모다. 그러다 보니 라가시 주변 마을에도 호텔과 음식점이 늘고 있다. 2010년부터는 자전거 무인 대여소를 설치해 무공해 자전거 투어를 시작한다. 라가시에서 나서 자란 셀린 베르티에는 “어릴 적만 해도 라가시는 가난한 농촌이었지만 지금은 성공한 자연 친화 마을이 됐다”면서 “이브로셰와 라가시 지자체의 친환경 컨셉트가 3개 도시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말했다.

◆태양·물·바람 이용 100% 무공해 호텔=지난해 무공해 관광 상품의 하나로 탄생한 100% 친환경 호텔은 여느 호텔과는 크게 달랐다. 들판과 시냇물 사이에 서있는 이 호텔은 태양·물·흙·바람 등 자연을 이용하고 있었다. 지붕에 태양광 집광판을 설치해 전기를 공급하고 물을 데우며 식수는 주변 계곡의 샘물을 끌어다 쓰기 때문에 생수를 사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게 호텔 측의 자랑이었다. 실제로 객실에서 수돗물을 틀어보니 얼음처럼 차갑고 신선한 물이 쏟아졌다. 날씨가 제법 더웠는데도 객실 문을 열어 놓으니 에어컨이 필요 없었다.

호텔 내 식당 메뉴는 80% 이상이 유기농이었다. 호텔에 딸린 정원에 호박·파·당근·가지 등을 직접 심어 비료나 농약 없이 키운 재료로 만든 음식이었다. 유제품·주스·와인도 모두 유기농이었다. 객실에도 샴푸·비누·침대매트·베갯잇·시트 등에 무공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호텔 측은 “자연을 아끼면서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라가시=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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