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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 환경기업 이브로셰 덕에 먹고사는 프랑스 마을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8일 오후 프랑스 파리에서 서쪽으로 400km 쯤 떨어진 브르타뉴 지방의 라가시시(市). 프랑스의 여느 시골과 다를 바 없는 곳인데도 사람들로 붐볐다. 외국인 관광객도 적지 않아 영어와 독일어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지난달 시작된 ‘사람과 자연’ 사진 전시회를 보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으로 시내 음식점에는 빈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카페에서 일하는 쥘리 아모프(24ㆍ여)는 “사진 전시회가 열리는 요즘은 관광객이 워낙 많아 밤늦게 까지 문을 연다”고 말했다. 사진 작가들이 아프리카 등을 돌며 찍은 자연의 모습은 갤러리 뿐 아니라 마을 곳곳에 붙어 있었다. 카페와 가정집 외벽, 계곡에도 사진이 걸렸다. 도시 전체가 자연 박물관이자 전시회장 같았다.
◇친환경 컨셉트가 주변 3개 도시 먹여 살려=라가시는 40년전만 해도 전형적인 가난한 농촌 도시였다. 농사가 주업인데, 날씨가 좋지 않아 값 싼 옥수수 등을 재배하는게 고작이었다. 어려운 환경에 주민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1950년대에 1200여명이던 인구는 60년대로 접어들면서 1000명 이하로 줄었다. 쇠락하던 라가시는 친환경 화장품 회사인 이브로셰가 기업 활동 근거지로 삼으면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59년 설립된 이브로셰는 1970년 대부터 매출이 크게 늘면서 라가시 인근에 공장을 세 곳 지었다. 그 결과 라가시 인구는 30년 동안 3배가 늘어 2500명을 웃돌게 됐다. 식물 연구가ㆍ공장 노동자ㆍ조경 전문가ㆍ운송업자 등 직원이 1500명이나 필요하게 되면서 외부 유입이 많아진 것이다.
특히 이브로셰의 창업자 이브 로셰 회장이 시장으로 선출된 뒤 도시 전체가 친환경 공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로셰 시장은 화장품 제조에 필요한 식물 재료를 공급하기 위해 마을에 정원을 가꿨다.

처음에는 화장품에 주로 사용하는 20여종이었지만 점차 규모를 키워 지금은 1100종에 면적은 45만㎡에 달한다. 정원에 들어가보니 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식물 연구원이 정원을 돌면서 “대나무는 피부를 매끄럽게 해서 샤워젤을 만들고 애기똥풀은 안면 홍조를 없애주기 때문에 얼굴 크림에 넣는다”고 설명하자 여성 관광객들이 관심을 보였다.
‘자연 친화 마을’이란 이미지가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요즘처럼 사진 전시회가 열리는 기간에는 6∼7월에만 1만5000여명이 찾아오는 등 매년 관광객이 6만명을 넘는다. 도시 인구의 25배에 달하는 규모다. 영국ㆍ벨기에ㆍ독일인들이 많은 편인데 요즘은 유기농 투어를 즐기는 미국인들도 소문을 듣고 온다. 그러다 보니 라가시 주변 마을에도 호텔과 음식점이 늘고 있다. 2010년부터는 자전거 무인 대여소를 설치해 무공해 자전거 투어를 시작한다. 라가시에서 나서 자란 셀린느 베르티에는 “어릴적만해도 라가시는 가난한 농촌이었지만 지금은 성공한 자연 친화 마을이 됐다”면서 “이브로셰와 라가시 지자체의 친환경 컨셉트가 3개 도시를 먹여살리고 있다”고 말했다.
◇태양ㆍ물ㆍ바람 이용 100% 무공해 호텔=지난해 무공해 관광 상품의 하나로 탄생한 100% 친환경 호텔은 여느 호텔과는 크게 달랐다. 들판과 시냇물 사이에 서있는 이 호텔은 태양ㆍ물ㆍ흙ㆍ바람 등 자연을 이용하고 있었다. 지붕에 태양광 집광판을 설치해 전기를 공급하고 물을 데우며 식수는 주변 계곡의 샘물을 끌어다 쓰기 때문에 생수를 사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게 호텔측의 자랑이었다. 실제로 객실에서 수도물을 틀어보니 얼음처럼 차갑고 신선한 물이 쏟아졌다. 날씨가 제법 더웠는데도 바람이 많은 지형이라 객실 문을 열어놓으니 에어컨이 필요 없었다.
호텔 내 식당 메뉴는 80% 이상이 유기농이었다. 호텔에 딸린 정원에 호박ㆍ파ㆍ당근ㆍ가지 등을 직접 심어 비료나 농약 없이 키운 재료로 만든 음식이었다. 유제품ㆍ주스·와인도 모두 유기농이었다. 객실에도 샴푸·비누·침대매트·베갯잇·시트 등에 무공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호텔측은 “자연을 아끼면서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라가시=전진배 특파원allonsy@joongang.co.kr
☞이브로셰=천연 식물 재료만으로 화장품을 만드는 프랑스 회사. 1959년 설립 직후부터 환경 보호를 위해 동물 실험과 프레온 가스 사용을 하지 않는다. 화장품 용기는 재활용하며 겉면의 잉크도 천연 재료를 쓴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이중 포장을 하지 않고 제품 설명서는 포장상자 안쪽 면에 인쇄한다. 91년부터 개도국에 나무심기 운동 등 세계적인 환경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이브로셰 재단 이사장 자크 로셰 인터뷰

이브로셰 재단 이사장 겸 라가시 시장인 자크 로셰는 8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친환경 컨셉트는 돈 드는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오래도록 먹여살릴 수 있는 돈 벌어다 주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화장품 업체 이브로셰의 창업자 이브로셰의 세번째 아들로 환경운동을 전담하는 이브로셰 재단을 이끌고 있다. 그는 세계 각지에서 나무 심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환경운동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50년대만 해도 친환경 사업은 낯선 분야였을텐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천연 재료로 화장품을 직접 만들었던 아버지의 소신이었다. 사람에 이로운게 바로 자연이라는 점을 그 때부터 알고 있던 것이다. 당시만해도 천연재료니 친환경이니 하는 것들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조금 지나면서 그린 이브로셰의 이미지가 세계속에 널리 알려지면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흔히들 환경을 생각하면서 사업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고 불평 하는데.

“친환경은 돈을 쓰는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돈을 벌어주는 것이다. 인류의 친구인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오래도록 먹고살게 해주는 일이다. 초기 비용이 들 수 있지만 길게 보면 돈을 절약해주는 길이기도 하다. 앞으로 친환경은 특별한 분야가 아닌 당연한 흐름이 될 것이다.”

-환경운동가 경력이 있고 이브로셰 재단 역시 환경운동을 벌이고 있다. 어떤 일을 주로 하나.

“아프리카와 아시아·남미의 개발도상국에 나무 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 회사는 프랑스내에서도 정원을 가꾸고 나무를 심어왔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친구인 나무를 심는 일은 늘 보람을 가져다 준다. 우리 일 이외에도 다른 환경운동 단체도 돕는다.”

-기업 사장이 지차제장을 맡는다는게 생소한 일인데.

“시장은 시민들이 직접 뽑는 것이다. 라가시의 경우 이브로셰가 친환경 도시를 가꾸면서 새롭게 태어났다. 주민들도 이런 이미지를 계속 이어가기를 바라는 것 같다. 아버지도 고향인 라가시를 친환경 부자 도시로 만드는데 애착이 있다. 나도 주민들이 원하는 이상 라가시를 (세계의) 대표적인 친환경 도시로 가꾸고 싶다 ”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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