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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 후배 ‘인생 측량’ 가르치는 선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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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4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고봉중·고등학교(서울소년원) 2층에 있는 강의실 한 곳에 새 팻말이 붙었다. ‘김인배 교실’. 이날 첫 강의를 시작한 측량기능사 과정 강의실에 이름 석 자가 붙은 것이다. ‘김인배’는 법무부에 이 과정 개설을 건의하고, 강사비와 교육기자재 구입비용 등도 지원한 후원자였다.

14일 김인배씨가 경기도 의왕시 고봉중·고교 측량기능사 과정 강의실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이 강의실은 이 과정을 제안하고 비용 등을 지원한 김씨의 이름을 따서 ‘김인배 교실’로 명명됐다. [박종근 기자]


“여기서 배우지 않는다면 밖에 나가서 더 배우기 어려워요. 기회는 주어졌을 때 잘 이용해야 합니다.”

강의가 시작되기 앞서 기념특강에 나선 김인배(45)씨는 자신을 ‘여러분의 선배’라고 소개했다. 김씨는 “선배도 한두 번 잘못을 했지만 지금은 사회의 평범한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며 “여러분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강원도 삼척에서 연 매출 100억원대의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김씨이지만 10대 시절 두 차례나 소년원을 거쳤다. 처음 소년원 생활을 한 것은 열두 살 때였다. 친구들과 어울려 라면과 과자를 훔치다가 붙잡힌 것이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난 뒤 홀어머니는 다섯 남매를 키우기 위해 옥수수와 빵을 팔았다. 하지만 외아들이었던 김씨는 소년원을 다녀온 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계속 밖으로 겉돌았다.

열여덟 살이 되던 해 김씨는 큰 싸움에 휘말려 또 다시 소년원에 오게 됐다. 1년10개월의 소년원 생활. 나이 때문이었을까. 이번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무작정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명심보감, 탈무드, 공자님 말씀이 가슴에 다가왔다.

“내가 떳떳하다면 남에게 거짓말할 필요가 없겠구나, 나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기 위해 무엇이든 도전해 보자, 그런 깨달음이 들더군요. 그동안 혼자 고민했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책 속에 있었습니다.”

출소 후 20대가 된 그는 택시기사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원에서 만났던 선생님이 그를 찾아왔다. “가끔 들러서 애들 좀 보고 가라”는 한마디가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살 집을 짓기 위해 설계도를 연구하다 건축업으로 직업을 바꾸게 됐다. 무턱대고 대학 교수를 찾아가 건축설계를 가르쳐 달라고 졸라 토목 기술사 자격증을 땄다. 대학에 가기 위해 중·고등부 검정고시를 치렀다. 강원대 토목공학과 학사와 석사 과정까지 마쳤고 건설회사 사장에 시의원도 됐다.

그렇게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 김씨는 계속 전국의 소년원을 찾았다. 1년에 10여 차례 소년원생을 만났다. 특강 횟수만 지금까지 300회에 이른다. 한 번 원생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10여 통의 편지를 받을 정도로 그의 강의는 인기가 높다. 2001년부터는 서울소년창업보육원 외부전문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소년원에서 나가게 될 원생들에게 초기 창업 자금이나 물품 등을 지원하기도 했다.

박유미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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