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라토리엄 원인·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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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러시아가 모라토리엄 선언을 함으로써 금융위기의 태풍이 아시아에 이어 남미.동유럽에까지 파급돼 세계경제 전체가 최악의 상태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7월 태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이제 아시아 지역을 벗어나 신흥시장으로 확산되는 서곡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금융시장에서는 이미 지난주 두차례의 주식거래 중단 사태가 발생했고, 러시아 국채의 유통수익률이 연 1백50%대를 넘어서는 등 공황상태를 면치 못해왔다.

특히 이번주에만 러시아 은행들이 갚아야 할 외채가 13억달러나 되고 17일 하룻동안 3억달러가 몰려있었다.

유일한 돈줄은 은행들이 보유한 러시아 정부의 단기 국채를 시장에 내다파는 것이나 러시아 정부가 이를 소화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는 현재 1백70억달러에 불과하다.

지난주 국제적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무디스가 러시아의 국가 신용등급을 한단계씩 하향 조정한 것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러시아의 국가 두마 (하원)가 IMF와 합의한 재정개혁법안의 승인을 몇달째 미뤄온 것도 위기 확대에 한몫했다.

이 때문에 지난 14일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전화로 공동 대처를 약속한 것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달 24일 64억달러 규모의 단기 국채를 7~20년짜리 중단기 달러 표시 채권으로 전환했고, 2백26억달러 규모의 IMF 지원금으로 9월말까지 외화 표시 외채의 상환은 가능한 상태다.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일단 러시아 경제와 밀접한 동구권 국가들과 러시아에 대한 최대 채권국인 독일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전망이다.

옛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독립국가연합 (CIS) 의 전체 무역중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75%에 이르고 있다.

게다가 독일이 러시아에 빌려준 돈은 지난 7월말 현재 5백1억달러. 러시아의 총 외채규모 1천2백30억달러중 40%에 이르는 규모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무너지면 독일은행들은 거대한 부실 채권을 떠 안을 수밖에 없게 돼 마르크화의 약세와 증시 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다.

유럽의 기축통화인 마르크화가 흔들리면 내년 유럽 단일통화 도입을 앞두고 있는 유럽 전역이 악영항을 받게 된다.

또한 독일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주변의 동유럽 국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동유럽 국가중 체코와 불가리아는 지난해 이미 외채 리스케줄링 (상환일정 조정) 을 하는 등 외환위기에 빠진 경험이 있다.

또한 러시아에 직접 타격을 받은 독일 금융기관 등 유럽계 자금이 아시아와 남미에서 이탈하게 되면 아시아 경제위기로 인한 원자재 하락 등으로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브라질 등 남미에도 연쇄 파급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일본의 엔화 약세를 더욱 자극하고 중국이 위안 (元) 화 방어를 포기할 경우 '제2의 외환위기' 는 불가피하다.

김원배.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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