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다음 50년, 누가 이끌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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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는 지금 지극히 우울하고 암담한 상황에서 건국 50주년을 맞는다.

건국 50주년이라면 온 국민이 기쁨을 나누는 축제를 가질 만도 하건만 지금 우리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IMF관리체제로 들어간 경제위기에다 집중폭우로 인한 참혹한 피해까지 겹쳐 고통과 시련, 실망과 비관이 온나라를 짓누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맞는 건국 50주년은 경축이나 기념행사보다는 오히려 이런 현실을 가져온 지난 50년을 생각하고, 오늘을 기점 (起點) 으로 한 다음 50년의 설계를 생각하는 특별한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역사

생각해 보면 우리의 지난 50년은 고통과 보람, 자랑과 수치가 교차된 역사였다.

지구상의 최빈국 (最貧國) 으로서 동족간에 죽고 죽이는 전쟁의 참화를 겪었고, 장기간 독재와 쿠데타와 탄압아래 신음했다.

반면 우리는 그런 엄혹한 여건 속에서도 전쟁의 폐허에서 나라를 다시 일으켰고, 세계가 놀란 경제기적을 이뤄냈으며 시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일궈냈다.

영광스런 역사도 우리의 역사요,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 역사다.

부끄러웠던 일 역시 다름 아닌 우리 손으로 만든 것이었던 이상 부끄럽다고 과거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우리 역사를 우리가 비하 (卑下) 한다면 남들은 더 우리를 비하할 것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지금부터 우리가 하기에 따라 지난 50년을 더 자랑스런 역사로 만들 수도 있고 더 수치스러운 역사로 만들 수도 있다.

우리가 앞으로 잘하고 성공한다면 과거의 부끄러운 일까지도 오히려 성공적 극복사례의 자랑거리로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은 지난 50년에서 교훈을 얻고 다음 50년의 비전과 설계를 준비하는 일이다.

우리는 왜 지난 50년 그토록 시련을 겪었고, 오늘날 다시 국난 (國難) 을 겪고 있는가.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고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했는가.

이런 문제부터 따지고 답 (答) 을 찾는 노력이 다음 50년을 준비하는 첫 걸음이 될 것으로 믿는다.

◇고통의 역사 지도층 빈곤탓

여러 가지 원인이 있고 많은 논리도 나온 바 있지만 우리가 보기에 대한민국 50년의 고통은 리더십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고통인 분단만 해도 해방정국을 이끈 지도층의 분열이 중대한 요인이었고, 온민족의 미증유의 재앙이었던 6.25전쟁도 북쪽 지도층의 도발책임은 물론이고 참화를 최악으로 만든 남쪽 지도층의 지도력빈곤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50년의 역사중 약 40년동안이나 우리 고통의 주원인이었던 독재.장기집권.탄압 역시 다름아닌 지도층 때문이었다.

요컨대 우리는 근대민주국가가 요구하는 민주적.합리적이고 일정한 지적 (知的) 능력과 수준을 갖춘 건전한 지도세력을 갖지 못한 데서 기나긴 세월 고통과 시련을 겪었던 것이다.

오늘의 경제위기 역시 우리에게 건전한 지도세력이 있었던들 회피할 수 있었거나 훨씬 덜 나쁜 상황으로 끌고 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난 역사를 이처럼 고통으로 몰아넣은 지도력 문제가 오늘에는 없는가.

현재의 지도세력중에서 21세기를 열어갈 믿을 만한 주도적 리더십이 과연 나올 수 있겠는가.

현실을 돌아보면 대답은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지금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불신의 대상이다.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국민의 불만.불신.경멸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각종 비리에 줄줄이 연루된 그 도덕성을 보거나, 소승적 (小乘的) 당리당략에 집착해 국정을 방치하는 그 무책임성을 보거나, 아직도 선거를 지역감정과 돈으로 치르는 시대착오적.해악적 (害惡的) 인 정치행태를 보거나 지금 정치권이 다음 50년의 성공적 스타트를 담당할 세력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렵다.

게다가 미래는 세계화.정보화 시대라고 한다.

이런 미래가 요구하는 비전.정보화 마인드.새로운 국가경영의 노하우.도덕성과 지적 능력… 이런 자질을 갖춘 인물이 과연 몇이나 될까.

◇21세기 열 지도세력 형성을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지금도 지난 50년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나아지지 못한 지도력 문제에 봉착하고 만다.

건전한 지도세력의 부재 (不在).결핍상태를 여전히 겪고 있고, 이런 상태로는 다음 50년의 설계가 무망 (無望) 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통일문제를 생각하면 더 가슴이 답답하다.

빠르든 늦든, 우리 힘으로든 아니든 통일은 오게 되고 오게 만들어야 하는데 통일에 대비하고 통일을 이루는 리더십, 통일후 이질적인 남북을 통합하는 리더십을 우리는 오늘날 누구, 어떤 세력한테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가 건국 50주년을 다음 50년의 기점으로 삼고, 다음 50년의 성공적 전개로 지난 50년의 역사까지 자랑스럽게 만들기로 결심한다면 가장 먼저 착수해야 할 가장 중대한 일이 곧 '건전한 지도세력' 의 형성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관점 (觀點)에서 우리는 우선 현정치세력의 대각성을 촉구하면서 새로운 지도세력 형성을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 시작돼야 함을 강조한다.

예컨대 정당이 민주화돼야 하고, 정부의 인사방식이 기득권중심에서 달라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각계각층 뜻있는 인사들의 입지 (立志) 와 분발이 필요하다.

우리는 21세기를 열어갈 건전한 지도세력 형성에 부단히 관심을 가질 것이며, 수시로 우리의 견해를 밝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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