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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와대 386 “우르르 민주당 들어갈 수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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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가 마무리됐다. 그가 남긴 정치적 유산의 계승을 놓고 야권에선 주도권 경쟁이 벌어질 판이다. 노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내세우다가, 서거 이후 상주(喪主)를 자처해 소위 ‘노무현 마케팅’으로 재미를 본 민주당은 친노(親盧) 세력을 포용하겠다고 나섰다. 반면 주가가 오른 장외 친노 세력들은 민주당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독자적인 세 결집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야권발 정계 개편 가능성을 중앙SUNDAY가 짚어봤다.

10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장식에서 참여정부 인사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김해=뉴시스


10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의 49재에는 야권 정치인들이 총집결했다. 이해찬·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김원기·임채정 전 국회의장 등 참여 정부 인사들을 비롯해 민주당에서는 정세균 대표 등 현역의원 40여 명이 참석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중앙홀 농성조 정도를 제외하곤 대부분 봉하마을을 찾았다. 여의도는 ‘개점 휴업’ 상태였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친노 인사들은 기자들의 정치적인 질문에 거의 답하지 않았다. 추모 행사이기 때문이겠지만, 서거 정국에 편승한 성급한 정치적 발언이 불러올 역풍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이해찬 “盧 가치 실현은 이제부터”
앞서 지난 7일 서울 조계사에서는 ‘노무현의 시대 정신과 그 과제’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자리에도 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노무현 정부 시절 참여했던 핵심 인사 상당수가 모습을 보였다.

참여정부 시절 ‘실세 총리’로 불렸던 이해찬 전 총리가 개회사를 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을 이제 안장하지만 그때부터가 새로운 노무현의 가치를 실현하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언급은 아니었지만, 그의 발언은 49재 이후 친노 세력의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해석됐다.

이날 행사에서 침묵을 지킨 정치인들과는 달리 교수들은 다양한 정치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야권의 재편을 강조했다. 영남 신당 창당을 주장한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지역주의 극복은 한편으로는 호남 기반인 민주당의 외연 확대를 통해, 다른 한편으론 민주당 밖에서의 노력을 통해 양 측면에서 이뤄질 필요가 있다”면서 “영남의 민주 세력이 ‘영남 민주연대’ 같은 것을 만들어 지방선거에서 독자적인 결과를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들도 민주당으로는 국민 요구에 부응할 수 없는 만큼 2003년 열린우리당 분당을 주도했던 친노 세력이 중심이 돼 ‘제2의 개혁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개혁 세력·영남권을 기반으로 한 이 같은 친노 신당 창당설은 이미 노 전 대통령 서거 이전부터 제기돼 왔던 밑그림이다. 과거 개혁당과 열린우리당 시절 참정연 출신의 친노 강경파, 부산·경남의 386 친노그룹들을 중심으로 ‘노무현 정신 계승’과 ‘전국 정당화’를 기치로 새로운 당을 만들고 선거를 앞둔 시점에 민주당과의 연대를 모색하자는 것이 골자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 서거 하루 전인 지난 5월 22일 일부 친노 인사들이 속리산에서 워크숍을 열고 향후 정치적 진로에 대해 토론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이 가운데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이 적극적이다. 다음은 워크숍에 참석했던 ‘노무현 청와대’의 386 비서관 A씨의 설명.

-친노 세력의 독자 창당이 야권 분열을 초래하지는 않을까.
“민주당이 지역주의를 극복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 (친노 그룹) 대부분 의문을 품고 있다. 아직은 두 갈래다. 당분간 민주당에 재창당 수준의 혁신을 요구하면서 일단 협력하자는 그룹이 하나 있다. 민주당이 바뀔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정당을 만들되 중요한 선거에서 유연하게 연대하자는 그룹이 또 다른 하나다.”

-이미 민주당에 친노 정치인들이 상당수 있는데 친노 정치세력이 하나로 뭉칠 수 있을까.
“현실적인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당 밖에 있는 친노 세력들이 민주당에 우르르 들어갈 수는 없다는 점이다.”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지금 구체적으로 (친노 인사들 사이에) 그런 논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지금처럼 기존 정당이 답답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 꼭 친노 인사가 아니라도 어떤 형태로든 다양한 정치 실험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그룹의 정치 세력화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친노 그룹의 행동 통일을 이끌어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같은 친노 세력이라 하더라도 원내·원외 여부, 당적, 출신 지역, 성향 등에 따라 독자 세력화론이나 민주당과의 통합론 또는 각자 장외에 머물면서 선거를 앞둔 시점에 민주당과 연대하자는 의견 등 제각각의 입장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이호철 “정치 안 한다”
더욱이 부산·경남 386 친노 그룹의 리더 격인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호철 전 민정수석은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해 창당 동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오는 10월 경남 양산 재·보선 출마나 내년 부산시장 출마설이 도는 문 전 실장은 이런 소문을 일축하고 있다.

결국 친노 정치 세력화의 중요 변수는 대중성 있는 유시민 전 장관의 거취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중앙SUNDAY 여론조사에서 야권 정치인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율(서울시장 후보감 17%)을 보였다. 유 전 장관은 언론과의 접촉은 피하면서 물밑으로는 자신의 팬클럽인 ‘시민 사랑’의 오프라인 모임을 전국을 돌며 할 정도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영남권 신당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서는 그가 청와대 386비서관 출신들이 주축인 신당 추진 그룹과 거리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민주당과는 구원(舊怨)이 뿌리깊고, 지난 총선 이후 대구에 주로 머물며 영남 지역에서의 재기를 노렸다는 점에서 민주당 복당보다는 신당 가능성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는 고민이 길어질 것임을 시사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듣고 싶다.
“아이디어가 없어 아무 얘기도 못한다. 그냥 목소리만 들은 걸로 하자.”

-침묵이 길어진다. 49재 이후에는 얘기할 수 있나.
“그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안희정·서갑원은 신당에 회의적
친노 그룹 중에서 민주당 중심의 연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주당의 현역 의원이거나 당직을 맡고 있는 인사들이다. 경기 안산 재·보선 출마설이 도는 안희정 최고위원을 비롯해, 서갑원·백원우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친노 그룹과 가까운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전까지는 친노 신당 논의가 있을 수 있었지만, 서거 이후 개혁 세력의 대동단결이 화두가 된 만큼 그런 가능성은 작아졌다”면서 “개인적으로 친노 신당 또는 유시민 신당 창당 가능성은 크지 않게 본다”고 말했다.

탈당파 친노 그룹의 또 다른 구심점인 이해찬 전 총리의 거취도 관심거리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포털사이트 다음의 ‘대장부엉이’ 카페에 글을 올리거나, 강연을 다니며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유 전 장관과의 연대를 모색하다 최근 민주당 복당으로 기운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 전 총리는 지난달 16일 김대중(DJ) 전 대통령과의 오찬에서도 “지금은 민주당 중심으로 잘 합쳐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영남이나 친노 그룹의 영역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것이 당시 모임에 참석한 박지원 의원의 전언이다. 이 전 총리의 한 측근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그가 2012년 정권교체를 위해 민주당이 제2 창당 수준의 혁신을 해야 한다는 정세균 대표의 입장에 원칙적으로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인터뷰에서 대권주자로 호감을 보였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도 현재 민주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독자적인 친노 세력화에 동참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한 전 총리는 지난 4·29 재·보선 때도 당의 부평을 출마 제의를 거절한 채 지원 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민주당, 강운태·이석형 복당 수용
일부 친노 그룹의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가 현실화될 경우 ‘노무현 신드롬’에서 재미를 봤던 민주당에 악재인 것은 분명하다. 지난 6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정세균 대표가 “당 밖의 민주 개혁 진영에게 문호를 개방해 재창당 수준의 혁신을 이루겠다”고 선언한 것도 그런 인식이 깔려 있다. 친노 포용을 지렛대로 노 전 대통령 지지 세력과 영남 지지층의 결집도를 높이겠다는 얘기다. DJ도 지난달 16일 민주당 지도부와 친노 인사들을 함께 오찬에 초대해 민주 연대를 하라는 ‘훈수’를 뒀다.

물론 민주당의 친노 끌어안기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열린우리당 창당이나 해체의 과정에서 생긴 구 열린우리당계와 구 민주당계의 불신과 갈등은 여전하다. 민주당 간판으로는 영남 지역에서 지방선거 당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현실도 영남 출신 친노 인사들을 망설이게 한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당내 기득권을 상당 부분 양보하더라도 친노 진영을 포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정 대표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 하루 만에 민주당이 무소속 강운태 의원과 전갑길 전 광산구청장, 이석형 함평 군수의 복당을 받아들인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강 의원은 이해찬 전 총리와 가깝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광주시장 출마를 희망하는 강 의원이나 전남지사 출마를 원하는 이 군수를 끌어들인 것은 지방선거 공천에 경쟁 체제를 도입함으로써 외부 세력이 민주당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넓혀놓겠다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정 대표와 DJ가 ‘합창’하고 있는 이 같은 야권의 민주 대연합론에 대해 한나라당의 반응은 차갑다. 익명을 요구한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과거 DJ가 야당 총재 시절 선거를 앞두곤 대민주 연합을 명분으로 당 외부 재야 인사 및 시민사회 세력을 입당시켜 유권자들의 착시 현상을 초래하고 득표력을 높였던 단골 수법을 떠올리게 한다”고 폄하했다.

보수 쪽선 MB-이회창 연대론 솔솔
민주 연합론의 또 다른 버전으로 내년 지방선거에서 범진보층이 선거 연대를 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조정식 의원은 “내년 6월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다른 야당 진보진영과도 반 MB선거 연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내년 지방선거는 2012년 대통령 선거로 가는 길목”이라면서 “어떤 형태로든 큰 틀에서 선거 연합이 모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 4월 재·보선 때 울산 지역 진보 후보 단일화를 위해 민주당 후보가 사퇴한 것을 예로 들었다.

진보 세력의 이런 연대 흐름에 맞춰 반대 쪽에서는 ‘충청권 보수 연대론’이 고개를 들 태세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9일 선진당 인사 입각에 대해 ‘정책 목표나 정치 상황에서 연대, 공조한다’는 전제 아래 긍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충청권 최대 현안인 ‘세종시’ 건설사업에 대해 한나라당과 선진당이 공조한 것처럼 이 총재의 지론인 강소국 연방제 개헌 등을 고리로 두 세력이 연대할 것이라는 소문마저 나돈다. 당장 이명박 대통령 유럽 순방 이후 논의될 개각에서 한승수 총리를 교체할 경우 후임으로 선진당 이 총재나 심대평 대표, 또는 이완구 충남지사, 이원종 전 충북지사 같은 충청 출신이 검토될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본지 6월 21일자 4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내년 지방선거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범진보 연대설이나 충청권 보수 연대론은 모두 한쪽이 가시화되면 다른 한쪽을 자극해 흐름을 빠르게 하는 비례 관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점쳤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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